‘빛의 예술-보헤미아 유리’ 전
중세 미술품부터 현대 작품까지
체코로 여행 간 사람들이 반드시 사 오는 기념품이 크리스탈 제품이다. 크리스탈의 명가 스와로프스키도 이 나라 보헤미아 지방의 유리공방에서 출발했다. 보헤미아 유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18세기에 당시 세계 최고이던 베네치아를 제쳤다.
보헤미아 유리 공예의 진수를 모은 특별전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가 10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작한다. 체코국립박물관과 프라하장식미술관이 가장 아끼는 소장품들을 가져왔다. 보헤미아 유리를 중심으로 체코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다.
전시에 나온 유리공예는 중세 스테인드글라스부터 현재 활동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까지 있다. 세공술이 놀랄 만큼 섬세하고 기법도 다양하다. 18세기 초반 유리잔에 새긴 멧돼지와 사슴 사냥 장면 같은 것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탄스럽다. 붉은 색 루비 유리, 금실을 박거나 금박 그림을 넣은 것, 불투명한 색과 문양을 넣어 준보석처럼 보이게 만든 것,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유리장신구 등 하나하나 살펴보는 게 즐겁다.
이 나라에서 유리공예는 흘러간 옛 시절의 영광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전통이다. 1920년대 초반 프라하 응용미술학교에 유리예술학과가 생겨 전문 교육을 해왔고 공공기관과 문화시설을 유리작품으로 장식하고 있다.
유리공예 외에 중세 교회의 미술품,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의 동판화 등도 볼 수 있다. 16세기 초반 사제복에 수놓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뭉클할 만큼 감동스럽다. 비단천에 부분적으로 벨벳과 새틴, 리넨을 대고 금속과 스팽클, 뿔구슬, 금, 은, 견사, 모사 등을 써서 수놓은 작품이다.
보헤미아 유리에 집중해서 그럴까. 보헤미아 유리공예를 낳은 체코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전시물은 아쉽게도 많지 않다. 동구 소비에트 블록이 붕괴할 때 벨벳혁명으로 다시 태어난 나라, 세계적인 시인 바츨라프 하벨을 초대 대통령으로 뽑은 나라가 체코다. 세계문학사에 눈부신 이름을 새긴 프란츠 카프카, 카렐 차페크, 밀란 쿤데라가 다 체코인이다. 음악가로는 작곡가 드보르자크와 스메타나가 보헤미아 출신이고 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했지만 말러 역시 보헤미아 사람이다. 마르틴 루터보다 먼저 종교개혁을 부르짖다 산 채로 화형 당한 민족주의자 얀 후스 또한 보헤미아 출신이다. 영화예술이 발달해 지금도 전세계에서 유학을 오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배경을 살핀 뒤에 이번 전시를 보면 더욱 흥미롭겠다. 4월 26일까지.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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