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수요 급증·세수 급감 등 20년 시차두고 양국 판박이
증세냐 국채발행이냐 선택 기로에
최근 논란이 거센 증세와 복지 구조조정 문제의 근본 배경은 인구구조 변화(급속한 고령화)다. 고령화로 복지수요 급증과 세금수입 급감이 동시에 닥치면서 결국은 재정악화를 피하지 못한 일본의 1990년대는 지금 한국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20년 전 일본처럼 우리 역시 증세냐, 국채 발행(나라 빚 확대)이냐를 결정해야 할 중대한 기로에 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8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한ㆍ일 재정구조의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 이후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기 시작한 일본에 이어 한국도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 감소시대에 접어든다. ‘인구보너스’(대졸 신규인력이 정년퇴직자보다 많은 상태) 시대가 종료되는 시점도 비슷할 만큼 양국의 인구구조는 20년 시차를 두고 닮아가고 있다.
단지 인구구조 만이 아니라 95년을 전후해 경기침체와 재정적자에 돌입한 일본과 지금의 한국은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우선 두 나라 모두 플러스 경제성장에도 불구, 세수의 절대액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80년대까지 줄곧 세수 증가를 보여온 일본은 90년대 성장률이 소폭이나마 플러스를 유지하면서도 세수가 큰 폭(2조~5조엔대)으로 감소한 해를 수 차례 겪었다. 한국 역시 2012년 이후 4년 연속 세수가 계획보다 덜 걷히는 결손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성장률 지속 하락에 따라 세수 증가율이 둔화되는 것도 비슷하다. 일본의 세수는 80년대 7%대 증가율에서 90년대 마이너스(-0.5%)로 고꾸라졌고, 한국은 2000년대 8.1%에서 2010년 이후 5.2%로 낮아졌다. 특히 부동산침체로 일본(80년대 8.8%→90년대 1.6%)과 한국(2000년대 8.2%→2010년 이후 4.6%)의 재산세수 증가율이 급락하는 점도 닮아있다.
복지지출의 급증 추세도 흡사하다. 일본의 총세수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81년 42.0%에서 2011년 80.3%로 30년 새 두 배 가량 급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절대적인 비중은 일본에 미치지 못하지만 95년 16.3%에서 2012년 36.0%로 17년 동안 두 배 이상 폭증하는 등 증가속도는 훨씬 빠르다.
보고서는 늘어나는 재정 소요를 위해 세수 확충 대신 국채 발행을 택해 재정을 크게 악화시킨 일본에 비해, 우리의 상황은 아직 양호하지만 조만간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설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의 국채의존도(일반회계세출 대비 보통채 발행의 비중)는 90년 9.2%에서 2014년 43.0%까지 급증했다. 90년에 이미 29.5%에 달했던 국민부담률(국내총생산 대비 세금ㆍ사회보험료 비중)을 2013년(29.4%)까지 전혀 늘리지 못한 데서 보듯, 세금 증가 대신 국채발행을 택한 결과다.
이에 비해 한국의 국채의존도(지난해 기준 15.2%)는 일본에 비해 걱정할 수준은 아니지만 국내총생산 대비 국고채 잔액 비중이 2000년 7.1%에서 지난해 29.4%로 급증할 만큼 국가채무의 빠른 증가 속도가 문제다. 우리의 국민부담률 수준(2012년 26.8%)도 아직은 선진국 평균(34%)보다 낮지만 향후 급증할 복지 수요를 감안하면 조만간 국채발행(재정 악화)이냐, 증세(재정 건전화)냐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게 될 것이란 게 보고서의 진단이다. 김동열 정책연구실장은 “한국의 경우,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가장 나중에 하고 싶다는 ‘눔프’(NOOMPㆍnot out of my pocket) 의식이 강하다”며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정보공개와 투명성 강화를 통한 조세저항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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