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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거창고의 ‘직업선택 십계명’

입력
2015.02.0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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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연봉을 마다하고 시베리아 호랑이에 빠져 사는 다큐멘터리 PD, 시골의 작은 학교를 자청해 들어간 초등학교 교사, 대학을 졸업하고 거리낌없이 시골로 내려간 농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직업을 바꾼 문화재 복원가…. 교육전문가 강현정씨가 최근 출간한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에 실린 경남 거창고 졸업생들의 모습이다. 출세가 보장된 탄탄한 길을 버리고 이들이 신념과 흥미를 찾아가게 한 동기는 뭐였을까.

▦ 거창고 강당에 걸린 오래된 액자에는 직업선택 십계명이 써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승진 기회와 장래성이 없는 곳을 택하라, 한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로 가라는 등 대개가 사회 통념을 벗어나는 내용이다. 오로지 좋은 대우만이 직업선택의 기준인 요즘 풍토에서는 이상주의자의 넋두리 정도로 치부될 것들이다. 학생들조차 액자를 떼내 바닥에 팽개칠 정도로 반감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십계명은 학생들에게 은연 중 스며들어 직업을 선택할 때 ‘브레이크’처럼 작동했다고 졸업생들은 말한다.

▦ 직업선택 십계명은 1956년 거창고를 인수한 전영창 선생의 교육철학을 아들인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전 교육혁신위원장)이 정리한 것이다. 전 선생은 한국전쟁 직후 빚을 얻어 폐교 위기에 처한 거창고를 인수해 인성교육의 본산으로 키웠다. 학생들은 겨울에 눈 내리면 수업하다 말고 뒷산으로 나가 토끼몰이에 열중하고 학교 한 켠에 마련된 텃밭에서 농사 짓는 법을 배운다. 입시를 내세우지 않고도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전국의 학교 관계자가 반드시 한 번쯤 찾아야 하는 ‘성지’로 부각됐다.

▦ “거고인(거창고 졸업생) 건축가가 세운 다리는 무너지지 않고, 거고인 의사는 목숨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거고인 판사가 내린 판결은 믿을 수 있고, 거고인 관리는 뇌물을 받지 않는다.”(2003년 거창고 졸업생 답사 중) 평균수명이 100세에 육박하는 우리 아이들의 인생은 삼모작, 사모작으로도 부족하다. 적성과 소질에 맞는 일을 찾지 않으면 길어진 삶만큼이나 불행은 커진다. 부모는 자녀 스스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봐 주기만 하면 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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