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아침 뉴스들은 일제히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의 철거 광경을 속보로 보여주었다. 회관 건물 내 많은 주민과 철거용역들이 뒤얽혀 충돌하고 있는데, 건물 밖에서는 포크레인이 창문과 외벽 철거를 강행하는 위험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나 출근 중 이 모습을 본 시민들은 아마 ‘용산참사’를 떠올리며 착잡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이 날 철거작업은 강남구청의 행정대집행으로 이루어졌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이 건축물은 당초 농산물직거래 점포로 사용한다고 신고하여 설치했는데, 주민들이 자치회관으로 불법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유로 지난해 12월부터 건축물 불법사용 연장불가와 자진철거 공문을 발송했고, 전날 행정대집행을 통지한 후 합법적으로 철거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의 입장은 달랐다. “구청장이 개인적 감정을 이유로 공권력을 이용해 보복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강남구청은 “불법 건축물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행정집행”이라고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개발방식을 둘러싸고 “강남구청장을 비판한 데 대한 강제적 보복 철거”라는 것이다.
합법과 강제라는 엇갈린 주장 사이에서 진행된 이 날 철거작업은 시작된 지 두세 시간도 채 되질 않아 끝났다. 행정대집행을 잠정 중단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기 때문이다. 300여명의 철거 인력과 장비들은 철수했고, 뉴스 보도도 사라졌다. 그러나 회관 건물은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서졌고, 주민들은 공권력의 남용에 대해 울분을 터뜨렸다.
구룡마을은 우리나라 부의 상징인 강남 타워팰리스에서 1.3㎞ 정도 떨어져 있는 ‘무허가 판자촌’이다. 구룡산 자락에 88올림픽 준비과정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된 곳이다. 현재 1,000여 세대 2,000여 명의 주민들이 제대로 된 전기나 수도, 오ㆍ폐수 시설도 없는 열악한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서울 도시 공간 한복판에서 근대화의 빛과 그림자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마을이다.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의 철거작업은 잠정 중단되었지만, 개발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은 앞으로 쉽게 풀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2011년 당초 서울시가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계획한 개발방식은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토지를 100% 수용한 후 개발하는 전면수용 공영개발이었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 취임 후 서울시는 땅값의 일부를 토지로 보상하는 ‘환지방식’을 제시했고, 강남구는 땅값을 돈으로 지불하는 ‘수용방식’을 고수하면서 다투게 되었다.
땅값 보상방식에 대한 서울시와 강남구 간 다툼은 각각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할 정도였다. 이 와중에 지난 해 8월 도시개발구역 지정이 해제되면서 다소 잠잠해 졌다. 그러나 작년 11월 마을에 큰 화재가 발생했고, 주민 안전을 우려한 서울시는 강남구의 요구대로 전면 수용방식에 동의하게 되었다. 사업 재개가 가시화된 것이다.
그러나 도시개발구역 지구지정이 이미 해제되었기 때문에, 사업을 재추진하려면 모든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강남구청장은 연초부터 개발사업의 재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최단기간에 성공적으로 끝내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자치회관에 대한 철거작업이 졸속하게 강행되었고, 주민들과 갈등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이 마을의 개발이 앞으로 재개되려면, 몇 가지 사항들이 원칙적으로 지켜질 수 있어야 한다. 강남구청이 지적한 바대로 대토지주나 투기꾼이 부당 이익을 챙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또한 서울시가 우려하는 것처럼 토지보상비의 상승으로 인해 이 마을에 지을 임대아파트의 임대료가 높아져서도 안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합법적이라고 할지라도 주민들의 의견에 반하는 철거작업이 강제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도시 개발과정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무토지 주민들의 삶터를 보장하는 것이다. 거주 주민들의 요구는 부분적으로 토지주나 투기꾼의 이해관계와 은밀히 연계될 수 있다. 서울시나 강남구는 개발 재추진에 앞서 이러한 부당한 연계를 차단하여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한편, 주민들의 주거권을 진정하게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최병두 대구대 지리교육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