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첫 목요일 역사ㆍ미술은 물론
의료선교ㆍ사회공헌 등 폭넓은 강의
가상 해부센터ㆍ로봇 시뮬레이션
亞 최초 도입 등 교육투자 확대
교수들 교육 프로그램도 강화
의대가 달라지고 있다. 주입식ㆍ도제식으로 이뤄지던 의대 교육이 소통과 토론을 중시하는 쌍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의사국시 합격자 양성소’라고 비아냥 받던 의대 교육에서 인문학을 접목하려는 노력도 시도되고 있다. 사회가, 환자들이 의술과 인술을 함께 갖춘 의사를 원하면서다. 고대 의대의 변화 노력을 살펴본다.
#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본관 2층의 유광사홀. 의대생들이 의학지식을 쌓는 공간인 이곳에서 인문학 강좌가 매달 첫째 목요일마다 열린다. 강좌 이름은 ‘생각의 향기’. 역사, 미술에서부터 의료선교와 사회공헌 활동 경험담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최근엔 ‘우리 역사 다시 보기’(강사 허성도 서울대 명예교수), ‘아름다운 세상만들기’(강사 최일도 목사), ‘조선시대 그림과 동양의 고전’(강사 고연희 작가), ‘그대 심장에 세계를 품어라’(강사 박상은 아프리카미래재단대표) 등 강의가 화제를 뿌렸다. 의대 본과 1,2학년생들은 이 강좌 시간만큼은 해부학 약리학 임상의학 등 두꺼운 의학서적을 덮고 소통과 사색 속으로 빠져든다.
그동안 의대 교육은 주입식ㆍ도제식이었다. 의학적 지식과 경험이 위에서 밑으로 일방통행식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의대가 의사국시 합격자 양성소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따가웠다. 방대학 지식을 짧은 기간 내 숙지해야 하기에 이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의대 교육이 소통과 토론을 중시하는 쌍방향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예비 의사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끌어올리는 데도 부쩍 관심을 쏟고 있다. 의대의 이런 태도 변화는 예전과 달라진 사회의 요구에 발맞추려는 노력이다. 환자들은 더 이상 기술(의술)만 가진 의사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증상 상태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치료법 선택 시에서도 환자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아는 의사를 원한다.
의학과 인문학의 상큼한 만남
고대 의대가 2013년 개설한 의인문학교실이 교육계, 의료계 안팎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의인문학교실은 의대생들이 훗날 의사가 돼 의술 뿐 아니라 환자들의 몸과 마음까지 보듬는 인술(인술)을 펼칠 수 있도록 인문학적 소양을 불어넣어 주자는 취지다. 김효명 고대 의대 학장은 “요즘 환자들은 의술 뿐 아니라 인술을 함께 갖춘 의사를 원한다”며 “좋은 의사를 길러내는 것이 고대 의대 교육의 핵심”이라고 했다.
박건우 고대 의대 교무부학장은 “의학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교수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가 달라지면 학생들 변화는 따라온다는 것이다. 고대 의대는 그래서 교수들을 지속적으로 교육시키는 프로그램 ‘FAME(Faculty Academy for Medical Education)’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의학교육, 학생코칭 등에 해박한 외부 전문가들을 초청,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진행하면서 교수의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고려대의료원의 안암, 구로, 안산 병원의 모든 교수들은 점심시간을 쪼개 격주마다 열리는 강좌를 화상 시스템을 통해 듣고 있다.
소외지역, 낙후지역 보듬기 눈길
# 고대 의대의 2015학년도 본과 오리엔테이션 안내 팜플릿. 학사일정, 교육과정, 장학제도에 이어 학생 지원 사항을 알리는 페이지 중에는 ‘International Expericence’라는 제목 아래 다가오는 여름방학 기간 필리핀 의료봉사 캠프에 대한 소개문이 큼지막한 고딕체 글씨로 적혀 있다.
고대 의대가 소외된 지역과 사람을 보듬는 따뜻한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봉사와 희생을 강조해왔다. 그래서일까. 이 대학 출신 중에는 국내와 해외의 오지에서 사회공헌이나 의료봉사를 하는 이들이 유독 많은 듯하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의료봉사를 한 공로로 제1회 이태석 신부상을 수상한 이재훈 씨가 대표적이다. 고대 의대생들은 누구나 2박3일 동안 장애체험과 봉사활동을 한다.
박 부학장은 “소외계층은 고대 의대의 타겟이다. 산업체가 밀집해 있는 구로와 안산에 부속병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면서 “손 잘리는 거 가장 잘 붙이는 곳이 고대병원이지 않나”라고 상기시켰다.
가상해부센터 등 인프라 확충
# 고대 의대의 임상실습실. 본과 3~4학년생들이 누워 있는 사람의 몸 여기저기를 잘라 보며 해부학 지식을 익힌다. 학생들이 보거나 체험하는 상황은 카데바(해부실습용 시신)를 이용하는 게 아닌, 가상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것. 종교 등 이유로 실제 시신과 마주하기를 꺼리는 이들도 인체구조를 익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편리하다.
고대 의대가 아시아 최초로 가상해부센터와 로봇시뮬레이터를 도입하는 등 교육 인프라 확충에 팔을 걷고 나섰다. 의술은 끝없이 진화한다. 교육 인프라도 의술 발전에 맞춰 첨단화 돼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다. 고대 의대가 2012년 7월 273억여원을 들여 완공한 본관은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현한 인텔리전트 빌딩이다. 의과학연구지원센터 줄기세포실험실 대형연구과제센터 실용해부센터 실험동물연구센터를 비롯, 다양한 연구공간과 실험실, 세미나실 등을 갖춘 교수학습지원센터가 들어서 있다. 지난해 2월에는 159억여원을 들인 문숙의학관이 완공됐다.
실험동물연구센터는 연구에 필요한 양질의 동물을 관리 공급, 동물실험을 통한 연구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밑거름이 되고 있다. 고대 의대는 시설인프라 확충에 이어 R&D 강화, 연구 네트워크 구축 등 공격적 연구 활동을 지속해 연구중심 대학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최고 수준의 바이오-메드 융합연구를 수행하는 메디컬 콤플렉스의 모습을 갖췄다.
박 부학장은 “돈을 어느 쪽에 투자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교육투자가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제대로 된 동물실험실과 미생물실험실, 해부학실험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송강섭기자 ericsong@hk.co.kr
고대 의대가 의학과 인문학의 만남인 의인문학교실을 개설하고 예비 의사들의 인성을 끌어올리는 데 힘쓰고 있다. 사진은 김효명 고대 의대 학장이 임상실습 첫 날 화이트코트 세리모니에서 의학과 3학년 학생들에게 흰 가운을 입혀 주는 모습. 고대 의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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