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 번째 한국문학전집은, 정한출판사에서 펴낸 ‘한국대표단편문학전집’이다. 그 30권의 책들이 누런 박스 몇 개에 차곡차곡 담겨 우리 집에 도착한 것은 1980년대 초ㆍ중반의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거나 5학년. 마루에 엎드려 반쯤 졸고 있다가 초인종 울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나의 독서 역사는 그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광수와 김동인으로 시작해 김주영으로 끝나는 그 단편전집은 작고작가와 생존작가를 구분해 작고작가의 경우에는 비교적 여러 편의 단편들을 실었고 생존작가는 한편이나 두편 씩의 대표 단편을 수록하고 있었다. 열한살 혹은 열두살의 나는 책장에서 제1권을 빼들었다. 딱딱한 하드커버의 표지를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만져보았고 그러다 한번 펼쳐 보았다. 세로로 인쇄되기는 했으나 한국어로 쓰였으니 읽을 수는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마도 김유정부터가 아니었을까 짐작하는데, 나는 그야말로 허겁지겁 소설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유년기의 나에게 그 소설들은 문학이기 전에 어른들의 세계를 훔쳐볼 수 있는 만화경 같은 것이었다. 만화경 속의 세상은 와글와글하고 무시무시하고 흥미진진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어쩌면 인생을 한국문학전집으로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의 ‘날개’도, 최서해의 ‘탈출기’도, 이제하의 ‘초식’도, 최인훈의 ‘웃음소리’도, 김승옥의 ‘무진기행’도 다 거기서 처음 읽었다. 욕망, 치정, 사기, 음담패설, 권태 같은 단어들도 다 그때 처음 들었다. 지금은 뜻을 알 듯 모를 듯하지만 머지않아 잘 알게 되리라 예감하면서 가슴 깊은 곳에 꽉 담아두었다.
요즘도 친정에 갈 때면 가끔 책장 맨 위칸에 꽂힌 그 전집을 눈으로 훑어보곤 한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아쉬움도 퍽 많다. 이태준, 박태원 등은 자취도 찾을 수 없고, (당시) 젊은 작가들 중 현재의 관점으로라면 ‘한국대표단편문학선’에 반드시 들어가 있어야 할 분들의 작품이 누락돼 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지금 내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 수록돼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학사의 시각으로 당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배제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그것은 무척 어렵고 민감하고 논쟁적인 화두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용감하게, 시도해야만 하는 작업임을 알고 있다.
얼마 전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이라는 전10권의 전집이 새로 출간됐다. 지난 100년간 발표된 한국 소설문학 작품들 가운데 황석영 선생이 직접 가려 뽑은 단편 101편이 재수록돼 있고, 각각의 말미마다 그가 직접 쓴 해설이 덧붙어 있다. 각 권마다 10명씩의 작가, 10편씩의 단편이 들어 있다. 1권은 ‘식민지의 어둠’ 이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염상섭의 ‘전화’로 시작해 이기영의 ‘쥐불’로 이어지고 김사량의 ‘빛속으로’로 마무리된다는 점이 일반의 예상을 깬다. 한국문학전집의 시작을 염상섭으로 한다는 것도, 또한 그의 유명작품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품으로 알려진 ‘전화’로 한다는 것도 이채롭다.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의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황석영’의 리스트이기 때문이다. 선자의 감식안과 취향이 당당히 반영되지 않은 리스트라면 선자의 이름을 구태여 강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황석영 선생은 “장면의 편린들이 모여 한 편의 풍속사, 사회사, 문화사가 저절로 형성됐다”면서 “열권을 모두 읽으면 지난 100년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선정한 목록을 천천히 살펴본다. 내 마음 속에 은밀히 품은 ‘한국문학 명단편’ 목록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고 전혀 다른 부분도 있었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목록에 어떻게 완벽한 전범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한국 문학 100년사를 또 다른 작품으로 열어 또 다른 작품으로 닫는, 또 다른 선자들의 (수많은) 새로운 리스트를 기대한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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