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폭행사건으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마음이 편치 않다. 폭력의 해악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근절돼야 하는 이유다. 폭력의 끔찍함 중 한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어릴 적 폭력의 피해자는 커서 폭력의 가해자로 둔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2년 넘게 같은 반 친구에게 폭행을 당한 중학교 3학년 A군은 친구의 마수에게 벗어나기 위해 두 차례 가출을 시도한 후 부모의 손에 이끌려 정신과병원을 찾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 상대를 째려보는 날카로운 눈매에 껄렁껄렁한 비행청소년의 말투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을 정신분석학적으로 ‘공격자와 동일시 현상(Identification with aggressor)’이라 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때 싸워서 이기던지 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던지 해서 그 영향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괴롭힘을 계속 받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괴롭히는 사람을 닮게 된다는 뜻이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인 셈이다.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술만 먹고 들어오면 어머니를 때리고 자식을 못살게 구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던 B씨. 하지만 결혼 후 자신이 그렇게 증오했던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을 느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주로 자기중심이 없고, 주체성이 부족하며, 자기를 괴롭히는 대상에 대한 심한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느끼는 경우 자기가 싫어하는 대상을 닮는다”고 한다. 호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돼 며느리 시집살이를 고되게 시키고, 부하직원을 심하게 다룬 상사 밑에서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 윗사람이 돼 자신이 당한 만큼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경우도 모두 같은 이유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지속된 체벌을 받은 아이들은 수치심을 갖게 된다. 당장 매 맞기 싫어 말은 듣지만 내적으론 이미 존엄성을 침해 당한 상태라는 것. 이렇게 존엄성을 침해 당한 아이들은 긍정적인 동기를 만들지 못하고, 안 좋은 상황을 피하려는 동기가 삶의 중심적 동력이 된다고 한다. 인지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능지수를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체벌을 받은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지능지수가 3~5점 정도 낮다. 두뇌를 영상으로 촬영해 비교하면 반복적으로 체벌을 받는 아이들은 두뇌 전체 용적이 평균 이하로 성장하며, 특히 사고기능을 총괄하는 전두엽의 크기가 차이가 난다.
지속적으로 체벌을 당한 아이는 체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친구나 동생이 잘못하면 부모나 선생처럼 주먹을 날려도 된다고 여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을 닮게 되면 괴롭히던 사람이 무섭지 않고, 가깝게 느껴지며, 괴롭힘을 당하면서 억눌리고 쌓인 분노를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표출하면 쾌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폭력을 휘둘러 동심을 멍들게 한 어린이집 교사는 마땅히 처벌 받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또 한 가지. 지금 수많은 가정에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게으른 부모가 쓰는 방법으로, 더 좋은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기보다 당장 쉬운 것, 고민 안 해도 되는 것, 부모가 나에게 썼기에 내게 익숙한 것”이라는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 말이 뜨끔하게 다가오는 부모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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