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1회 음주량이 7잔(여성 5잔) 이상인 고위험음주율이 2005년 14.9%에서 2012년 17.2%로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저도소주 출시로 순수 알코올로 환산한 알코올소비량은 감소했지만 음주율과 고위험음주율은 동반 상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가임기 여성의 음주증가로 태아알코올증후군과 함께 유방암 등 여성질환도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저도소주의 판매 증가는 음주문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 지표다. 경기변동의 척도로 여겨지던 위스키 전성시대 저물고 있음을 알리고 있는 것. 요즘은 맥주에 양주를 섞는 ‘양폭’보다 소주를 섞는 ‘소폭’이 더 인기다.
‘승무’ 등 주옥 같은 시로 사랑 받고 있는 청록파 동탁 조지훈 시인은 생존 당시 ‘신출귀몰의 주선’ ‘행동형 주걸’로 불렸다. 조 시인은 밤새 눈 한번 붙이지 않고 통음을 해도 절대 자세가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한다. 그가 만든 ‘주도 18단계’는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좀 길긴 하지만 읽다 보면 움찔해지는 하는 대목도 있을 것이다.
[주도 18단계]
1. 부주(不酒): 술을 아주 못 마시지는 않으나 안 마시는 사람 (9급)
2. 외주(畏酒): 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8급)
3. 민주(憫酒): 술을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겁내는 사람 (7급)
4. 은주(隱酒): 술을 마실 줄 알고 겁내지 않고 취할 줄 알지만 돈 아까워 홀로 숨어 마시는 사람 (6급)
5. 상주(商酒): 술을 마실 줄도 알고 좋아도 하지만 무슨 잇속이 있어야만 술값을 내는 사람 (5급)
6. 색주(色酒): 성생활을 위해서 술을 마시는 사람 (4급)
7. 수주(睡酒):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3급)
8. 반주(飯酒): 밥맛을 돋구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2급)
9. 학주(學酒): 술의 진경(珍景)을 배우면서 마시는 사람. 주졸(酒卒) (1급)
10. 애주(愛酒): 술을 취미로 맛보는 사람. 주도(酒徒) (1단)
11. 기주(嗜酒): 술의 참맛에 반한 사람. 주객(酒喀) (2단)
12. 탐주(耽酒): 술의 진경을 터득한 사람. 주호(酒豪) (3단)
13. 폭주(暴酒):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주광(酒狂) (4단)
14. 장주(長酒): 주도 삼매(三昧)에 든 사람. 주선(酒仙) (5단)
15. 석주(惜酒):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6단)
16. 낙주(樂酒):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함께 유유자적 하는 사람. 주성(酒 聖) (7단)
17. 관주(關酒):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 없게 된 사람. 주종(酒宗) (8단)
18. 폐주(廢酒): 술로 인해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열반주(涅槃酒) (9단)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유행이다. 매주 금요일이면 홍대 입구, 강남역 등 전국 곳곳의 도심 번화가는 부나방처럼 몰려든 이들로 불야성이란다. 불금 파티는 이튿날인 토요일 오전까지 이어진다. 체력은 국력이라더니, 이쯤이면 ‘체력은 주력(酒力)’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조지훈의 주도 18단계를 보면, 불금을 즐기는 이들은 ‘색주’에 해당될 듯하다. 물론 ‘학주’ ‘애주’의 단계에 있는 이들도 있을 수 있지만, 불금이란 말에는 ‘색’의 의미가 포함돼 있음을 부인할 순 없다. 예나 지금이나 술 권하는 사회인 대한민국. 불금에 동참할 수 없는 이들이라면 색주보다는 낙주로 업그레이드하고 볼 일이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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