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판매액 42% 적립해 소외계층 지원 등 공익사업 투입
'복권이 공익사업에 기여' 아는 사람 해마다 줄어 작년엔 45% 그쳐
"복지 사각지대 지원 확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김영숙(78)씨는 몇 해 전 인감 사기를 당했다. 집을 포함한 전 재산을 잃어 노숙자 신세가 될 위기에 처한 그에게 동네 주민센터의 한 직원은 국민임대주택 신청을 권했다. 기초생활수급자라 자격이 된다는 이유였다. 그 결과 김씨는 월세 8만원으로 27㎡ 규모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베트남 출신 타니(29)씨는 결혼 1년 만에 한국어 실력이 크게 늘었다.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무료로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다닌 결과다. 남편인 김재성(38)씨는 “아내와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는데 센터에 다니면서 우리말도 늘고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도 많아져 결혼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고은혜(13)양은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학교를 마치면 집에서 혼자 생활해야 했다. 그러던 중 작년 가을 집 근처에 무료로 운영되는 아동센터가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고양은 “이 곳에서는 책을 읽거나 악기를 배울 수도 있고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아 학원 다니는 친구들이 이제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임대주택과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아동센터는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사업이란 점 외에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사업 예산의 상당액을 복권판매액에서 충당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공익사업에 사용되는 복권기금의 액수는 10년 사이 12조원을 넘어서며 해마다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04년 복권사업을 통합 관리하기 위해 복권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복권기금의 누적액은 작년 말 기준 12조1,701억4,900만원으로 집계됐다. 연도별 사업비는 작년 1조5,116억원으로 2010년 이후 4년 연속 증가해 사상 최고액를 기록했다.
전체 복권판매액 가운데 공익사업에 쓰이는 복권기금으로 조성되는 비중은 42%다. 나머지 50%는 당첨금, 8%는 사업비용으로 사용된다.
이렇게 조성된 복권기금의 35%는 법으로 정한 공익사업에 배분된다. 지난해의 경우 과학기술진흥기금(675억원), 문화재보호기금(619억원), 지방자치단체(820억원), 제주개발특별회계(870억원) 등에 총 5,042억원이 사용됐다.
나머지 65%는 복권위원회가 선정한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사업, 주거지원, 문화예술 등의 사업에 지원된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운영하는 국민임대주택 관련 사업이다. LH의 작년 국민임대주택 사업비는 총 1조7,820억원인데 이 중 5,380억원이 복권기금에서 나온 비용이었다.
우리나라 복권사업의 공익기금 조성률(42%)은 선진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세계복권협회(WLA)의 2013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공익기금 조성률은 30.4%, 독일은 39.4%, 프랑스는 23.3% 수준이다.
그럼에도 복권기금의 공익사업 지원에 대한 인식은 낮다. 복권위원회가 작년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복권기금이 공익사업 지원에 쓰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45%에 그쳤다. 2011년 49.5% 이후 3년 연속 하락세다.
이런 까닭에 정부가 복권사업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복권사업은 일반예산의 재정이 미치지 못하는 범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해온 만큼 앞으로도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보듬을 수 있는 따뜻한 동력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청소년과 여성 등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계층에 대한 지원을 늘릴 방침을 세우고 있다. 청소년 육성기금 지원액은 작년 467억원에서 올해 770억원으로 65% 가량 늘어났고, 여성발전기금 지원도 1,505억원에서 올해 1,759억원으로 증액했다. 서민층의 주거안정을 위한 국민주택기금은 5,672억원으로 작년보다 292억원을 늘렸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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