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3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는 이 회사의 분산됐던 마케팅과 광고기능을 통합하며, 한 권의 책을 인용했다. “조정(漕艇) 경기에는 ‘스윙’이라는 말이 있다. 선수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호흡과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 상태를 말한다. 회사 차원에서 봤을 때, 또 지도부 차원에서 봤을 때, 또 개인 차원에서 봤을 때 ‘스윙’을 찾는 것이 이번 인사의 목적이다.”
나델라 CEO가 인용한 책은 당시 갓 출간된 대니얼 제임스 브라운의 ‘더 보이즈 인 더 보트’(The Boys in the Boat)였다. 최근 미국에서 보수ㆍ진보 진영 사이의 논란과 함께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책도 뉴욕타임스의 2015년 2월 집계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저자가 수 년간 수 백명을 직접 인터뷰하고 신문 기사와 관공서 자료 등을 조사한 끝에 펴낸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미국이 대공황으로 시름하던 시기인 1930년대다. 벌목공, 농부, 조선소 노동자 등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청년들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부잣집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내용이 기본 줄거리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는 미국의 흑인 육상선수 제시 오웬스만 기억하지만,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또 다른 미국인들이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조 랜츠 등 미국 서부 촌동네 워싱턴대 조정 선수 9명이 그들이다.
TV가 나오기 이전인 1930년대에는 미국에서 농구보다는 조정이 인기 스포츠였다. 지금이야 전국으로 중계 방송되는 NBA에 열광하는 사람이 많지만, 교통ㆍ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는 시장님이나 지역 유지가 직접 나서 시합 개시를 알리는 조정이 지역 사회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었다. 특히 1852년부터 미국 동부 하버드와 예일대 학생들이 대항 경기를 펼치면서 조정은 미국 상류사회 자제들의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성공’ 의지는 꺾을 수 없었던 조 랜츠는 8명의 동료들과 조정경기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각자 개성이 뚜렷했던 9명이 호흡을 맞춰, 마침내 나델라 CEO가 말한 ‘스윙’의 경지에 올랐을 때 지구상에 그들의 적수는 없었다.
국가 대표 선발전이나 다름없는 동부 엘리트 대학 팀과의 경쟁에서 잇따라 승리한 뒤, 조정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도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의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마침내 올림픽에 출전한 이들은 독일, 이탈리아 대표팀과 맞서게 된다. 독일 관중의 열띤 응원 속에 펼쳐진 경기에서 미국 대표팀은 초반에는 독일, 이탈리아에 뒤졌으나 조 랜츠와 그의 친구들이 막판 ‘스윙’을 이뤄내 대 역전극을 펼치게 된다.
저자 브라운은 ‘누구의 아들이냐’ 보다는 ‘어떻게 노력했느냐’가 성공 열쇠라는 미국적 가치를 보여준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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