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 제청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과거 전력이 드러나며 자격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박 후보자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ㆍ은폐했던 검찰 수사팀의 검사였던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92년 부산지검 재직 시절에는 무고한 시민을 물고문한 경찰을 봐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박 후보자를 비롯한 당시 서울지검 수사팀은 서울대생 박종철씨를 물고문해 죽게 만든 치안본부 대공수사관들로부터 “고문치사의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진술을 받고도 수사를 확대하지 않았다. 검찰은 몇 달 지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이 사실을 폭로하자 재수사를 통해 고문 경찰관 3명을 추가 구속했다. 검찰은 2차 수사에서도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을 무혐의 처분했다가 6ㆍ10 항쟁 이후인 1988년에야 기소했다. 박 후보자는 1, 2차 수사에 모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력의 외압에 굴복해 수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박 후보자가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것을 두고 ‘부적절한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박 후보자가 11일로 예정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임명동의안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담당검사였다는 내용이 빠져 있어 고의 누락 의혹마저 일고 있다.
박 후보자는 이 사건 말고도 부산에서 멀쩡한 시민을 물고문한 혐의로 입건된 경찰관을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불구속 처리하기도 했다. 경찰이 피해 시민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등 압력을 행사해 사건을 축소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던 터였다. 당시 법조계에서도 “경찰공무원의 독직폭행 사건을 불구속 처리한 것은 당국의 고문 근절 의지를 의심케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말할 것도 없이 대법원은 사법정의와 인권의 마지막 보루다. 대법관에게 다른 어떤 고위공직자보다 높은 도덕성과 품격이 요구되는 이유다. 서울변호사회는 어제“박 후보자는 스스로의 부끄러운 행동을 제대로 사과한 적도 없다”며 대법관 임명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박 후보자는 논란을 빚자 뒤늦게 “수사검사의 한 사람으로서 당시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해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박 후보자에 대한 전력 논란은 대법관 후보 선정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다시 상기시킨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법원조직법에 의해 위원 10명 중 7명이 현직 법조인들로 채워져 법조인들이 미는 동료 법조인이 대법관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현행 규정에는 대법원장이 후보를 제시할 수 있도록 돼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후보들의 자질이나 도덕성 등에 대한 검증에 소홀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관련 규정부터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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