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개봉한 영화 ‘시몬’은 디지털 공간에 구현된 가상의 배우 시몬이 톱스타가 돼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상황을 묘사한 바 있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지금 실제 연예인의 홀로그램이 무대에 서서 공연을 펼치는 시대가 도래했다.
1월 14일 서울 삼성동에 개장한 SM엔터테인먼트의 복합문화공간 ‘코엑스 아티움’의 핵심 콘텐츠는 ‘홀로그램 뮤지컬’이다. 현재 상영중인 ‘스쿨 오즈’에는 동방신기의 최강창민과 에프엑스의 루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연기를 펼치는 것은 실제 가수가 아니라 그들의 모습을 촬영한 홀로그램이다. 이 공연장은 SM 소속 가수들의 무대 공연도 2월 하순부터 홀로그램으로 상영할 예정이다. YG엔터테인먼트의 싸이, 빅뱅과 투애니원은 서울 을지로6가에 위치한 공연장 ‘클라이브(K-라이브의 준말)’에서 홀로그램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 특별한 공연들은 한국을 여행하는 해외의 한국 가요 팬들에게 ‘필수 순례 코스’의 일부다. 반면 한국 팬들은 반신반의한다. 아무리 홀로그램이 정교하다 한들 살아 움직이는 실제 아이돌 스타와 같은 경험을 제공하기는 어렵다. 코엑스 아티움에서 만난 샤이니의 팬들은 역으로 “홀로그램 기술이 발전하면 해외 공연은 홀로그램으로만 해도 될 테니 그만큼 한국 활동이 많아질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자사의 아이돌들을 ‘현실 속에서 가장 환상적인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룹 엑소가 데뷔할 때는 12명이 두 개의 세계로 6명씩 나눠 짝을 이루고 있다는 황당한 세계관이 설정돼 있었다. 지금은 12명 중 2명이 떠났으니 무의미한 이야기가 됐다. 이런 가운데 SM과 YG가 만들어낸 홀로그램 아이돌은 ‘이런 저런 피치 못할 사정’으로 깨져가는 아이돌 그룹을 둘러싼 환상을 붙잡아 두기 위한 노력으로 읽힌다.
아이돌로서 이상적인 외모와 성격을 갖춘 ‘사이버 가수’의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말 한국에도 아담, 류시아, 사이다가 등장해 일시적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기술적인 한계와 수익성 부족으로 실패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애니메이션 가수’들은 크게 성공했다. 록밴드 ‘블러’의 리더 데이먼 알반이 제작한 4인조 가상 밴드 ‘고릴라즈’가 대표적인 예다. 일본에서는 ‘아이돌 마스터’와 ‘러브라이브’ 등 아이돌 소재의 게임과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인기를 끌었다. 실존 인물에 비해 더 극적인 스토리텔링과 재창작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환상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물론 지금까지 등장한 가상 아이돌의 인기 뒤에는 단단한 현실의 기반이 있었다. 데이먼 알반이나 아이돌을 연기하는 성우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가상 그룹의 인기에 도움이 됐다. 당장 상영중인 홀로그램 역시 어디까지나 실존하는 아이돌을 촬영해 모사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홀로그램 기술과 그래픽이 조금 더 정교화된다면 무대 위에서 춤추는 사이버 가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돌은 환상 속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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