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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칼럼] 문화유산 활용의 방법을 찾자

입력
2015.02.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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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의 보존ㆍ개발 논쟁

둘 사이의 균형, 조화가 해답

공평지구 개발이 시금석 돼야

잉글랜드 중부의 바스(Bath)는 영국에서 유일하게 자연 온천을 가진 휴양도시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역사도시다. 목욕탕을 뜻하는 영어가 이 도시 이름에서 유래할 정도로 유서가 깊은 곳으로, 1세기에 개발된 로마식 대욕탕부터 역사가 시작한다. 중세에는 단순한 종교 중심지였다가 18세기에 로마의 욕탕 유적을 발굴한 후 다시 온천 휴양지가 됐다. 당시 대표적 온천인 ‘왕과 왕비의 욕탕’은 로마 욕탕 유적 위에 18세기 신고전 양식의 건물을 지었다. 여기서 온천욕을 하면 당대 최신의 시설을 이용하는 것과 동시에 1,700년 전의 역사를 동시에 체험하는 셈이다.

“보존이냐, 개발이냐”는 문화유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장 흔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흔히 양자택일의 극단적인 주장으로 흘러 격렬한 사회적 갈등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최근 벌어졌던 풍납토성을 둘러싼 서울시와 문화재청의 대립에서도 갈등은 나타났다. 과연 문화유산을 완전히 복원, 또는 완전히 개발해야만 할까, 또 그 극단적인 실현이 가능할 것일까? 해답은 양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다시 말해 복원과 개발의 적절한 조화에 있다. 바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의 중심지, 종로 타워 뒤에 위치한 공평지구는 도시환경정비사업 중이다. 이 사업은 우아한 명칭과는 달리 기존 수많은 작은 건물들을 다 철거하고 대형 오피스빌딩을 짓는 개발 사업이다. 이를 위해 우선 문화재 발굴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500년 전의 골목길과 총 37개소의 건물터를 발견했다. 대지 면적만도 7,850㎡다.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불타 무너진 것으로 추정하니, 서울시내에서 발굴된 유적 중 가장 오래된 유산들이다. 가정집, 창고 등 다양한 용도로 보이는 건물터들은 이 지역이 과거 육의전 뒷동네, 중산층들의 거주지였음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온돌방은 한 칸 정도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마루로 만들어져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아주 오래된 한옥형식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유적이다. 기단과 초석들을 높게 만들고 축대를 쌓아 상습적인 침수를 대비한 모습도 생생하다. 게다가 당시의 길과 골목들도 그대로 남아있어 완전한 도시 유적이다. 이런 예는 전국에서도 희귀하고, 어쩌면 지난 개발들로 모두 사라져 유일한 유산일 것이다. 발굴된 길을 걸어보면 양 옆에 높게 쌓은 축대들이 그대로 있고, 그 너머 초석들이 온전히 남아 한옥들의 생김새를 상상할 수 있다. 더욱이 몇 집은 전통적인 마루가 그대로 무너져 묻혀서 형태까지 정확히 남아있다. 함께 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마치 로마 폼페이의 유적을 걷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만큼 완전하게 남겨진 유적이고, 500년 전 도시민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희귀한 유산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벌써부터 완전 보존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국가가 이 땅을 매입해서 역사 유적 공원을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반면 해당 개발업체는 보존 가치가 있는 몇 채의 유적만 실내로 옮겨 재현하고 예정대로 대규모 건물을 짓겠다고 한다. 현재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업체 측의 제안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 유적들은 한 채 한 채의 집보다는 그들로 이뤄진 길과 건물지라는 도시 형태가 더 가치가 높다. 업체 측의 제안대로라면 몇 개의 건물터는 보존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도시구조는 보존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유적 공원을 만들자니 조 단위의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며 서울을 500년 전으로 되돌리자는 모순이기도 하다.

보존과 개발 사이, 현대적 활용의 방법은 없을까? 지하와 1층은 발굴 유적 보존에 할애하고 그 위로 건설하면 된다. 우리의 건설기술로 충분히 가능하다. 지하 개발을 못하는 대신, 법규 완화 등을 통해 보상하면 된다. 그래도 추가되는 건설비는 도심 공원 하나 만드는 셈치고 국가가 보상한다. 여러 가지 수반되는 문제는 뛰어난 건축적 아이디어와 설계로 풀어나가면 된다. 경희궁 터에 발굴한 유적들을 드러내고 서울 역사박물관을 지을 때도 유사한 제안을 했었다. 물론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문제는 성숙된 문화적 안목과 정책적 의지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ㆍ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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