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지구에는 5~8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삶을 가르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62% 지어진 이 장벽은 완공되면 전체 길이가 712㎞에 이른다. 국제사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격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와 다름 없다고 비난하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테러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팔레스타인 감독 하니 아부 아사드가 연출한 ‘오마르’는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한 칼란디아 지역의 분리장벽을 넘나드는 팔레스타인 청년의 얼굴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제빵사인 오마르는 매일 총알을 피해 줄을 타고 장벽을 넘는다. 여자친구이자 친구 타렉의 여동생인 나디아를 만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친구 사이인 타렉, 암자드와 함께 장벽을 지키는 이스라엘 군인을 살해하는 일에 가담한 그는 혼자 경찰에 붙잡혀 투옥된다. 오마르의 딜레마는 이때 시작한다. 평생 감옥에 갇혀 살 것인가 이스라엘 경찰의 제안대로 타렉을 넘길 것인가. 이중첩자로 풀려난 것을 숨긴 채 친구들을 만나던 그는 타렉과 함께 매복 작전에 뛰어들다가 또다시 체포되고 만다. 이스라엘 수사관에게서 친구의 배신을 전해 들은 오마르는 다시 한 번 이중첩자 제안을 받아들인다. 타렉과 밀고자, 여자친구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그의 고민은 뜻하지 않은 총격 사건으로 마무리된다. 몇 년이 지나 평범한 삶을 살던 오마르는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깨닫는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정치적 갈등을 그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이스라엘의 억압이나 팔레스타인의 고통스런 현실을 그리는 데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감독의 말처럼 ‘오마르’는 “정치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닌 캐릭터들의 감정적인 여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사랑 이야기를 기반으로 믿음과 배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여기에는 정치적 배신과 개인적 배신이 뒤엉켜 있다.
감독은 정치적 화두를 직설적으로 던지는 대신 정치적 문제가 개인의 삶과 뒤섞여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지켜본다. 분리장벽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를 가를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내부를 분리하는 현실도 잊지 않는다. “15㎞만 가면 바다인데 한번도 못 가봤다”며 뉴질랜드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 조직을 배신했다는 한 남자는 “조직이 해준 게 뭐가 있냐”고 반문한다.
하니 아부 아사드 감독은 자살 폭탄 테러에 나선 두 청년의 딜레마를 그린 ‘천국을 향하여’(2005)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오마르’는 감독이 8년 만에 이스라엘로 돌아와 찍은 작품이다. ‘천국을 향하여’보다는 장르적인 화법으로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2013년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심사위원상 수상작.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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