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늘고, 제대로 배운다. 단, 내가 메울 수 있는 선 안에서만.” 후배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물론 인내심이라는 놈이 참으로 야박해 슬리퍼라도 벗어 던지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게다. 그러나 뱉어놓은 말이 있으니 손에 쥔 종이컵도 내려놓고 변명이건 하소연이건 들어보기로 했다. 얘기를 하면서 직시하는 문제 안에 보통은 답이 있지 않나. 그것을 인정하고 대안을 내놓거나 책임으로부터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내게 없었기에 지금도 그리운 ‘선배’ 흉내를 내며 안아줄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은 모르게 풀어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리 많이 여러 나라를 들락거려도 공연이나 미팅, 행사참가 등 모두 출장이니 처음 가는 도시에서 호텔에 도착하면 빨간 버스 시간과 노선표를 챙겨 가방에 넣어두는 버릇이 생겼다. 바쁜 일정으로 널을 뛸지언정 짬짬이 도시를 훑으며 언제나처럼 ‘아쉬움을 남겨둬야 또 올 수 있다’고 위로하며 돌아서야 하니까. “비행기로 2시간인데 가실래요?” 할 수 없이 재래시장 구경으로 서운함을 덮으며 이 되뇜은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에서 희망봉 타령을 하던 철딱서니일 때 대륙의 끝,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후 반복하지 않은 내 실수도.
홍콩으로 넘어가기 위해 수속을 마치고 약간 여유가 생겼다. 고문 같은 비행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세운 대책은 탑승을 마감하는 순간 착석하는 것. 안전띠에 갇히기 전에 가능한 한 비행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하릴없이 기웃거리다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그렇게 한동안 따라나선 녀석과 별 뜻도 없는 농담에 실컷 웃고 있는데 문득 등골이 서늘하다. 출발 5분 전, “세상에, 미쳤구나.” 지각을 할망정 멀어지는 버스를 좇아 뛰는 짓은 학생일 때도 하지 않았건만 딸린 식구 20명을 태운 비행기가 떠버리면 이건 필시 악몽이 될 터. 바로 튕기듯 일어나 뛰기 시작했는데 요하네스버그 공항보다 더 넓은 곳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더 지났는지 모른다. 차오른 숨에 하늘이 노래지며 다리가 풀리려는데 문에 양 팔을 걸치고 승무원과 씨름중인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아, 살았다.” 이후 난 반드시 게이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게 됐다. 물론 꼬리를 문 줄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비행기에 오르는 버릇은 여전하지만 같은 실수는 내 사전에 없다.
그러나 내가 내린 판단이 여러 사람을 책임지기에 합당하다고 자만하는 순간 외줄에 올라섰음을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그리고 나도 모자란 인간이다. 근 한달 여 남미투어를 위해 나선 길이었다. 진작 확인한 일련번호는 ‘M’으로 시작하는 전자여권인데 정작 카운터에서는 아니란다. 언제나 그렇듯 부족하거나 빠듯한 예산에 마일리지도 적립 못하는 저렴한 항공권을 사야 했고 파나마까지 경유하는 피곤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모로 돌아도 예정된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을. 이제 미국 경유용 전자여행허가서도 받았고 비행기만 타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끝내 출국을 거부당한 그녀는 다음날 캐나다 항공으로 하루 늦게 합류해야 했다.
좀 더 비싸고 몸은 덜 힘든 여정이었건만 본인의 여권을 제대로 확인도 못했다는 눈총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던 그녀는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국 공항을 지나며 매번 일행과 떨어져 무서웠던 기억을 지우지 못하리라.
내 실수에는 너그럽고, 남의 실수는 놓칠 새라 잘근잘근 씹어대는 기쁨을 무엇과 바꿀까. 뱉고 나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소위 뒷담화, 자칫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지만 당사자를 제외한 모두에게 끊기 힘든 담배처럼 입에 착 붙는 찰진 재밋거리니 “실수하지 말라”는 것이 여린 친구들에게는 차라리 관대한 주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015년 지금 이 사회는 우리를 과도한 자극으로 길들여 무기력하고 재미없이 세상을 살도록 몰아댄다. 오죽하면 누군가의 약점에 달려들어 물어뜯는 것이 일상의 재미가 됐을까. 이러니 실수가 내 등을 찌르면 감당하지 못해 쓰러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해도 좋다.” 딛고 일어서면 실수는 약점이 될 수 없으니 남의 실수는 용서하고 차라리 내 실수를 도마에 올리자.
김신아 아트 프로듀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