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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새누리의 놀라운 생존본능

입력
2015.02.0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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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원내대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서 새 원내대표에 당선된 유승민의원이 경쟁자인 이주영 의원의 축하를 받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2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원내대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서 새 원내대표에 당선된 유승민의원이 경쟁자인 이주영 의원의 축하를 받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참 무서운 사람들이다.”

2일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에 유승민 의원이 선출됐다는 소식을 들은 한 새정치민주연합 중진의원의 첫 반응이다. 곧바로 “새누리당 사람들은 어떻게 화장을 하면 총선에서 이길 수 있을지를 아는 것”이라는 말이 이어졌다. 기자는 그와 통화한 3분여 동안 ‘무섭다’, ‘놀랍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새누리당 안팎에선 이날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서 유 신임 원내대표가 경쟁자인 이주영 의원을 앞설 것이란 예상이 꽤 많았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지난 연말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권력암투설이 확산되면서부터,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으로 민심이 돌아서는 게 눈에 보이면서부터, ‘콘크리트’에 비유됐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30%선 밑으로 추락할 만큼 여권 전체에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부터다.

사실 박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마치고 당에 복귀하는 이 의원을 향해 이례적으로 극찬을 했을 때만 해도, 일부 친박계 핵심의원들이 ‘이주영 원내대표론’을 앞장서 설파하고 나설 때만 해도, 그리고 유 원내대표에 비해 이 의원의 친화력이 부각될 때만 해도 승부를 예측하긴 어려웠다. 오히려 이 의원의 우세를 꼽는 의견이 더 많았다.

하지만 혼전양상을 빚던 경선 구도는 1월 중순 쯤부터 유 원내대표의 상승세가 뚜렷해지는 기류로 바뀌었고, 1월 하순 들어선 아예 유 원내대표 우세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변화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향곡선을 그리던 시기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물론 마지막 변수는 역시나 박심(朴心)이었다. 누가 뭐래도 여전히 여권 내 유일무이한 구심점은 박 대통령이란 점에서다. 따라서 관전자 입장에서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이 의원에게 있다는 게 눈에 보이는데 설마…’ 하는 생각을 쉽게 떨쳐내기 어려웠다. 분위기로만 보면 유 원내대표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그래도 박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원내대표 경선 투표권을 가진 새누리당의 의원들은 단호했다. 적어도 냉정함의 측면에선 관전자들보다 몇 수 위였다. 그들은 “박 대통령을 밀쳐내선 안된다”(이 의원)는 호소에 귀를 막고 주저없이 “20대 총선 승리의 불쏘시개로 써달라”(유 원내대표)는 제안에 적극 호응했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결과적으로 박심이 큰 힘을 쓰지 못한 건 아이러니다. 박 대통령이 2011년 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이듬해 총선 공천을 관장했던 만큼 연령대를 불문하고 상당수가 사실상 ‘박근혜 키즈’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까지 연기해가며 투영하려던 박심이 다른 누구도 아닌 수많은 ‘박근혜 키즈’에 의해 막힌 것이다.

그래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생존본능이 더욱 놀랍고, 그래서 새누리당의 동물적인 감각이 더욱 무섭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탄핵역풍으로 당이 존립위기에 몰렸을 때 당 대표를 맡겨 121석의 신화를 쓰게 해놓고, 2012년 총선ㆍ대선 승리가 가물가물해지자 비상대권을 맡겨 연이은 승리를 일구게 해놓고…. 이제 와선 여론과 민심을 앞세워 박심을 거부했다. 게다가 이런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예상 가능하고 단호하다.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의 선택이 단지 내년 총선 승리만이 아니라 유 원내대표의 정치력과 정책능력에 대한 기대감의 반영일 것이란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향후 새누리당이 민심을 제대로 어루만지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총선 승리공식만을 좇아갔다는 비난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어쩌면 이는 유 원내대표 본인에게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보수적 안정성에 기반을 두고 경제ㆍ사회ㆍ복지정책에서 중도개혁 색채가 분명한 그는 TK의 구심을 넘어 여권 전체의 ‘미래’가 될 만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지금껏 민심을 외면해온 다수 의원들이 이번엔 민심을 이유로 자신을 선택한 것 자체가 모순이고 지극히 이기적인 행동임을 분명히 인식하지 않으면 그를 향한 국민적 기대감은 신기루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새정치연합 당권 경쟁의 결말이 궁금해진다. 새정치연합 의원들과 대의원들과 당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일반국민들의 선호와 같을까 다를까. 순전히 정치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새정치연합 전당대회 결과가 나오고 나면 어느 정도 내년 총선의 흐름을 예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양정대 정치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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