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새 지지율 10%P 넘게 곤두박질
측근 감싸고 정책무능에 등돌린 민심
박 대통령이 달라져야 문제가 풀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조촐한 생일상을 받았다. 청와대 참모들하고만 간단한 점심을 했다. 박 대통령은 당초 아무런 생일행사 없이 지나가려고 했는데 참모들이 점심이라도 하자고 건의해 그나마 이뤄졌다고 한다. 심기가 얼마나 불편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박 대통령도 2015년 첫 달이 이토록 엉클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게다. 집권 3년 차를 맞아 올해는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어느 때보다 결연한 의지를 다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한 달 만에 지지율이 10%포인트 넘게 곤두박질쳤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추락의 시작은 신년 기자회견이었다. 대통령에게 연두기자회견은 소중한 기회다.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올 한해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자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신년회견에서 국민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자신의 구상을 과감하고 호소력 있게 펼쳐 90%라는 경이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박 대통령의 회견은 희망은 고사하고 한숨과 탄식, 분노를 안겨줬다. 그만큼 민심을 몰랐고 인식은 안이했다.
공공의 적이 되다시피 한 측근들을 내치기는커녕 오히려 감싸려 들었다. 그런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은 국민보다 측근들을 더 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차라리 안 하는 것만도 못한 기자회견이 됐다. 민심을 얻지 못했다고 판단한 박 대통령은 앞당겨 청와대 개편 카드를 꺼냈으나 알맹이가 빠진 채였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여전히 살아 남았고 실세 3인방은 건재했다. 친박의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신선함이 떨어졌고 특보단은 무용론에 휩싸였다. 곧 교체될 예정이라는 김 실장은 총리 교체와 특보단 인사에 이어 후속 개각, 청와대 비서관ㆍ행정관 인사까지 챙기고 있다. 그만둘 사람이 후임자가 데리고 일할 사람을 뽑는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이 이런 눈 가리고 아웅하는 행태를 모를 리 없다. 박 대통령 특유의 불통과 폐쇄적인 인사스타일은 금쪽같은 새해 첫 달의 절반을 속절없이 흘려 보냈다.
전반부가 인사무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면 후반부는 정책적 무능을 여실히 드러냈다. 연말정산 파동은 아마추어 정부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된 지 1년 동안 시뮬레이션 한 번만 제대로 했어도 이번과 같은 혼란은 막을 수 있었다. 정부가 이런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국정에 큰 구멍이 뚫려있다는 얘기다. 여론이 들끓자 뒤늦게 내놓은 대책은 사상 초유의 소급환급이라는 극약처방이었다. 후유증은 생각도 않고 불길을 잡는 데만 급급했다.
첫 번째 단추를 잘못 뀄으니 나머지 단추가 제대로 맞을 리 없다.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안을 밝힌 지 한나절 만에 번복됐고, 18개월 동안 준비했던 건강보험료 개선안은 휴지조각이 됐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 중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여당에서조차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국민들도 “증세와 복지를 선택하라”고 하는데도 박 대통령과 정부는 고장 난 시계처럼 증세는 없다는 얘기만 되풀이할 뿐이다.
지난 한 달을 돌이켜보면 이 정부가 한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국민을 허탈하게 만들고 울화를 돋우고 억장을 무너지게 한 게 전부다. 그나마 국민이 얻은 소득이라면 더 이상 정부를 믿어서는 안되겠다는 교훈이다. 그 동안 회의가 부족해서 정책 조율이 미흡했던 게 아닌데 협의기구를 늘린다고 달라질까. 원칙도, 소신도, 능력도 없는 ‘3(無) 정부’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이집을 가고 재래시장을 찾는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지난 2년을 되돌아보고 국정운영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한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예상 밖 대승을 거둔 비박계 유승민 의원도 당선 인사에서 “대통령이 민심에 귀를 기울이라”고 충고했다. 신뢰를 잃은 대통령은 불행하다. 그러나 그런 대통령을 앞으로 3년이나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더 불행하다. 박 대통령은 달라져야 한다.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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