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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배달·사환 거치며 '잘 나가는' 웨딩 대표로

입력
2015.02.01 20:00
수정
2018.12.1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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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배달·사환 거치며 '잘 나가는' 웨딩 대표로

사활걸고 투자한 예식장 민원으로 중단됐을 때 위기

힘든 시절 떠올리며 가족과 이웃 챙기는데 관심

경북 포항에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예식장을 꼽으라면 북구 죽도동 웨딩캐슬과 남구 대잠동 포항시청 옆 UA컨벤션이다. 한 곳만 가져도 남부러울 게 없을 텐데 둘 다 장기현(48) 대표 소유다. 게다가 스튜디오와 웨딩쇼핑몰도 운영하면서 직원 수만 100명을 넘기고 있다.

지난 2006년 법원 경매로 나온 귀빈예식장(현 웨딩캐슬)을 28억100만원에 낙찰 받을 때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마흔도 안된 젊은 사람이 대형 예식장의 새 주인이 되고 이보다 규모가 곱절은 큰 건물을 짓는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를 준재벌 2세 정도로 봤다.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외모도 그런 소문에 불을 붙였다. “처가가 부자냐”는 질문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 가장의 역할을 포기한 아버지를 대신해 중학교 2학년 때 신문배달을 했고 식당 종업원인 어머니가 싸 온 반찬을 끼니로 때울 정도로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가난에 고교 진학도 포기하려 했던 그는 배달하고 남은 신문을 포항역에서 팔다 외삼촌한테 들키는 바람에 포항 동지고등학교 야간부에 원서를 내야 했다. 외삼촌이 역 앞 광장에서 엉엉 울며 사정하는 통에 고등학교만 마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던 그는 선배들의 도움으로 포항 중앙파출소 사환으로 일했다. 의무경찰들과 숙식하며 낮에는 파출소 내 청소 등 궂은일을, 저녁에는 야간수업을 받은 뒤 한 밤 중 순찰도 도는 고된 생활이었다.

그는 ‘무엇이든 기술이라도 배워야 먹고 살겠다’ 싶어 무작정 비디오제작사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포항에서 유일하게 결혼예식을 촬영해주는 업체였다. 주인은 ‘시킬 일이 없다’고 손사래 쳤다. 그는 업체 사장 부인의 대걸레를 뺏어 들고 바닥을 닦으며 “청소라도 하겠다”고 매달렸다. 주인은 혀를 내둘렀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한 그는 사무실 소파에서 쪼그려 자면서 어깨 너머로 비디오 편집기술을 배웠다. 쪽잠을 자던 습관으로 장 대표는 지금도 하루 4시간이상 잠을 자지 않고 이마저도 3번 나눠 잔다.

종업원 생활 6년 째인 어느 날 ‘다른 사업을 시작해 가게를 내놨다’는 사장의 말에 자신이 맡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인수하는데 필요한 돈은 2,000만원. 어렵게 모은 돈 700만원을 먼저 건네고 나머지는 대출을 받았다. 비디오점을 인수하고 3년이 지나 사진촬영을 배운 5살 아래 남동생과 50㎡평짜리 가게를 얻어 웨딩숍을 차렸다. 웨딩숍도 승승장구했다. 장 대표는 이때쯤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뻔뻔스럽게도 그는 신혼집을 구하기는커녕 처가가 웨딩숍과 가깝다는 이유로 대놓고 처가살이를 했다. 심지어 세탁비를 아끼기 위해 웨딩드레스 빨래까지 아내와 장모한테 맡겼다. 그 덕에 큰 돈을 벌게 된 장 대표는 죽도동에 빌딩 2층을 빌려 스튜디오까지 갖춘 웨딩숍을 확장해 열었다. 아내, 동생들과 앞만 보고 달린 그는 2000년 33살이 되던 해 현재 자신이 소유한 웨딩캐슬 예식장 옆에 330㎡ 대지를 구입하고 번듯한 건물까지 지을 수 있게 됐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2006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길을 가다 만난 지인에게 바로 옆 귀빈예식장이 경매 물건으로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장 대표는 옛 귀빈예식장을 낙찰 받은 뒤 뼈대만 남기고 리모델링했다. 개장하는데 1년이나 걸렸다.

주인이 두 번 바뀌고 경매 물건으로 나온 포항 꼴찌 예식장은 장 대표를 만나 1등 예식장으로 재탄생했다. 여세를 몰아 그는 이듬해 예식장을 직접 짓기로 마음먹었다. 터는 오랫동안 봐 두었던 남구 대잠동 포항시청 옆 대지였다. 하지만 시청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주말마다 교통체증이 우려되니 예식업 허가를 내주지 말라’고 시청에 요구하고 나서면서 법정소송까지 벌이게 됐다.

건물 공사는 중단됐고 온갖 비난의 화살에 급기야 잔고까지 바닥을 드러내자 하루 4시간의 쪽잠도 제대로 못 자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추운 겨울 한밤 중 얇은 셔츠 한 장만 입고 2시간씩 미친 듯 산을 돌아다녔다. 자신의 몸을 괴롭히지 않으면 정신적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아서였다.

6개월의 시간을 보내던 중 제기한 소송은 장 대표의 승리로 끝났다. 그는 첫 삽을 뜨고 2년이 지난 2010년 10월 소원했던 대잠동 예식장을 정식으로 열었다. 상호는 ‘UA컨벤션’으로 지었다.

그는 허가에 반대했던 주민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입주민들 모임 때마다 예식장내 뷔페식당을 흔쾌히 내줬다. 그를 ‘욕심 많은 장사꾼’이라고 손가락질 했던 사람들은 음식 맛을 보고는 예식장 홍보대사로 변신했다.

장 대표는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장애인 합동결혼식을 돕는 등 이전보다 사회봉사에 매진하고 있다. 이따금 대학 등의 초청으로 인생설계에 대한 강의도 펼치고 있다.

“강연장에서 취업난과 실직, 부도 등으로 힘들다고 푸념하는 청중에게 고교 졸업을 앞두고 비디오제작사의 문을 두드렸던 그 날 일을 이야기한다”는 그는 “사장 부인의 걸레를 빼앗지 않았다면 비디오제작 기술도 배우지 못했고 예식장을 짓는 일은 꿈조차 꾸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에 있는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하지만 반드시 얻겠다는 간절함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고 훈수했다.

김정혜기자 kj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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