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인질 참수 8일 만에 "일본 악몽 시작" 추가 위협
“남성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한 곳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토 겐지(後藤健二)로 추정되는 이 남성은 검은 복면을 쓴 남성이 칼을 목에 들이대자 기도하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교도통신)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인질로 억류중인 일본인 고토 겐지가 1일 새벽 끝내 살해됐다. 지난 달 24일 또 다른 인질 유카와 하루나(湯川遙菜)를 참수한 이후 8일만에 날아든 비보에 일본 열도는 충격에 빠졌다. 특히 IS가 무차별 인질 살해와 동시다발 테러를 자행하면서 IS의 공포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IS가 고토를 살해했음을 보여주는 1분 분량의 영상이 인터넷에 게재된 것은 한국시간 1일 오전 5시께였다. ‘일본 정부에 대한 메시지’라는 영어 문자로 시작되는 영상에는 영국 억양의 남성이 복면을 쓴 채 등장, “너희는 이슬람 칼리파 국가의 권위와 힘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동참하는 무모한 결정에 따라 이 칼은 고토 겐지를 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신의 국민은 어디에 있어도 살해할 것이다”라며 “일본의 악몽이 시작됐다”고 위협했다.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는 고토를 살해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첨부했다. 동영상 왼쪽에는 IS가 성명을 발표할 때 사용하는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일본 언론은 동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이 서방 인질 영상을 비롯, 지난 달 20일 유카와와 고토를 붙잡고 2억달러를 요구하던 영국인 지하드 존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IS는 앞서 29일 일몰까지 사형수 사지다 알리샤위와 고토를 맞바꿀 준비가 되지 않으면 자신들이 생포한 요르단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살해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한이 지나도록 IS의 연락이 없자 고토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2억 달러 몸값 협상 시한인 72시간을 지나고도 IS측의 반응이 없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24일 밤 늦게 유카와의 살해 소식이 전해진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열도 충격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나타나자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이날 오전 관계 각료회의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에 참석하기 위해 총리 관저로 모이기 시작했다. 평소 침착하기로 이름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비보를 접하고 관저로 황급히 뛰어 들어오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는 “테러행위가 재차 발생한 데 대해 격렬한 분노를 느끼며 단호하게 비난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비도덕적이고 비열하기 그지 없는 테러 행위에 강한 분노를 느낀다”며 “테러리스트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 禎一) 자민당 대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라고 말했고,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대표는 “통절한 슬픔과 강렬한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등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IS의 행위를 비난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날 일제히 호외를 발행했고, NHK 등 방송들도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고토의 사망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고토의 무사귀환을 바라던 가족들의 충격도 컸다. 고토의 모친 이시도 준코(石堂順子)는 아들의 참수 소식에 “슬픔의 눈물에 어떤 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아들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꿨고 분쟁과 가난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일했다”고 말했다. 유카와의 부친 유카와 쇼이치(湯川正一)는 “아들의 구출을 둘러싸고 최악의 결과가 나와 유감스럽다”며 “(고토의) 가족들에게 그저 미안하다는 마음뿐”이라고 전했다.
고토는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의 참상을 알려온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특히 분쟁지역에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아동과 여성, 군인을 강요당한 소년 등의 실태에 관심을 가졌다. 지난 해 8월 IS에 억류된 민간군사업체 대표 유카와를 돕기 위해 지난 해 10월 시리아를 통해 IS 거점 지역에 들어갔다가 억류됐다. 고토는 지난 해 10월 마지막으로 남긴 영상에서 유카와의 정보 등을 얻기 위해 시리아에 입국하는 자신의 심경을 인터넷에 남겼다. 그는 당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시리아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일본인) 여러분도 시리아인에게 책임을 지우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IS 자극발언, 요르단과 인질구출 엇박자
IS에 억류된 일본인 인질이 단 한명도 구출되지 못하고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책임소재를 둘러싼 논란도 예상된다. IS는 아베 총리가 지난 달 중동 순방 길에 “이슬람 국가와 싸우는 주변 각국에” 2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한 것이 인질 사건의 발단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및 유럽과 협조, 대테러 대책을 추진하는 외교 자체가 IS를 적대시한 것이라는 이유다.
일본과 요르단이 인질 구출을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엇갈린 것이 이번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은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IS는 고토의 석방 조건으로 요르단에 붙잡힌 여성 사형수 알리샤위와의 맞교환을 요구했으나, 요르단 정부는 IS에 억류된 자국 조종사 알카사스베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사실상 거절, 협상이 결렬됐다. 고토를 내세운 협상이 불발로 끝나면서 IS로서는 고토의 인질로서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판단,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처음부터 IS가 마음에 없는 협상을 내걸고 일본과 요르단을 교란시키려는 의도로 고토를 이용했다는 견해도 있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는 각국과의 연계를 통해 인질 구출에 전력을 다했다”면서 “요르단에서는 IS에 구속된 조종사의 구출을 최우선시 하는 여론이 높아 일본과의 유기적인 협력이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장관은 IS가 일본인 추가 살해를 예고한 것과 관련, 유엔평화유지활동(PKO) 등을 위해 해외에 파견중인 자위대가 IS의 테러대상이 되지 않도록 단독 외출을 금지하는 등 안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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