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트로피는 가져오지 못했지만 한국 축구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제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15년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개최국 호주에게 1-2로 석패했으나 한국 축구는 충분히 자랑스러웠다. 경제난에 지친 국민들에게 오랜만에 희망과 기쁨을 준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를 마친 뒤 한국어로 우리에게 말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 해도 됩니다.”
그렇다. 55년만의 아시아 정상 탈환에는 실패했다. 1988년 대회 준우승 이후 27년 만에 결승에 오른 한국은 1960년 제2회 대회에서의 우승 영광을 재현할 듯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예선 3경기와 8강, 4강까지 5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던 것만으로도 우리 축구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나 고작 4개월간 손발을 맞춘 대표팀이 일군 성적으로는 값진 수확이다.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게임을 할 때마다 성큼 성장하며 결승까지 진출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핵심은 슈틸리케호의 ‘변화 바람’이다. 확고한 지향점 설정, 합리적이고 투명한 선수 선발과 기용에 포인트가 있다. 볼 점유율을 높이는 축구로 공연처럼 관중이 즐기는 축구를 하고 싶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일관성도 높이 살만 하다. 그의 말대로 승리하는 축구보다 즐기는 축구를 이끌면서 창의성을 유도했다. 한국 축구계의 고질적 문제점인‘의리 축구’, 즉 친분관계로 대표팀을 선발하던 악습의 고리를 끊은 것도 질적인 변화에 도움이 됐다. 손흥민(레버쿠젠)이나 기성용(스완지시티) 등 스타 선수 외에 이정협(상주 상무)이나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같은 신인들을 발굴한 것은 슈틸리케의 훌륭한 직관과 철학에 따른 것이다.
한국 축구의 새로운 모습으로 ‘늪 축구’라는 말이 생겼다. 한국팀을 만나면 상대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늪에 빠진 듯 허우적댄다는 의미다. 실리를 추구한다는 의미의 ‘실학 축구’도 있다. 슈틸리케 감독에게는 실학자 다산 정약용에 빗댄 ‘다산 슈틸리케’라는 별명도 붙었다. 우리 대표팀은 2018 러시아월드컵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성공적인 첫걸음을 디뎠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꿈은 자유롭게 꿀 수 있지만 꿈이 우리를 결승까지 데려다 주지는 않을 것이다. 아시안컵에서의 문제점을 꼼꼼히 보완하고 더욱 창의적인 축구를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히딩크 신화’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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