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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국신(國臣)과 사신(私臣)

입력
2015.01.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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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43년(1717) 7월 19일. 미시(未時ㆍ오후 1~3시)경에 숙종은 희정당(熙政黨)으로 나가서 노론 영수인 좌의정 이이명(李?命)의 입시를 명했다. 승지 남도규(南道揆)와 사관 권적(權𥛚) 등이 들어가려 하자 내시가 좌의정 혼자 입시하라는 분부라며 막았다. 이이명과 독대(獨對)하겠다는 뜻이었다. 조선은 임금과 신하의 독대를 엄격하게 금지했다. 임금의 정사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하기에 모두 공개하는 것이 철칙이었다. 사관 권적이 “죄벌을 받더라도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며 희정당 문을 열어젖히려 하자 승지 남도규가 말렸다. 그 사이 독대는 진행되었고, 숙종이 승지와 사관의 입시를 허용한 것은 이미 독대가 끝난 후였다. 이 날짜(숙종실록 43년 7월 19일) 사관은 “이때 이이명은 이미 물러나와 자기 자리에 부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날 임금과 나누었던 말은 전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숙종 43년 정유년의 ‘정유독대(丁酉獨對)’로서 조선 후기 내내 문제가 되었다. 독대 직후 이이명은 숙종의 안질이 심하다면서 왕세자(경종) 대리청정을 건의했다. 그간 노론은 남인 출신 희빈 장씨 소생의 왕세자를 끌어내리려 했기 때문에 느닷없는 대리청정 주청에 반발이 거셌다. 이건창은 당의통략(黨議通略)에서 “(노론이) 세자의 대리청정을 찬성한 것은 장차 이를 구실로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이었다고 분석한 것처럼 대리청정을 시켰다가 작은 트집을 잡아 끌어내고 노론이 지지하는 숙빈 최씨 소생의 연잉군(영조)으로 교체하려는 의도라는 뜻이다.

독대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사헌부 장령 조명겸(趙鳴謙)은 “대신의 잘못된 거조로서 독대보다 심한 것은 없다”면서 이이명의 처벌을 주장했다. 82세의 노구로서 와병 중이었던 영중추부사 윤지완(尹趾完)은 관을 들고 상경해 격렬하게 항의했다. 소론 영수 윤지완은 “독대는 상하가 서로 잘못한 일입니다. 전하께서는 어찌 상국(相國ㆍ정승)을 사인(私人)으로 삼을 수 있으며 대신(大臣) 또한 어떻게 여러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지위로서 임금의 사신(私臣)이 될 수 있습니까?”(숙종실록 43년 7월 28일)라고 숙종과 이이명을 직접 비판했다. 환국(換局ㆍ정권교체)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신하들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겼던 숙종에게 정승을 개인의 신하로 삼을 수 있느냐고 비판하고, 이이명에게 정승으로서 임금 개인의 신하가 될 수 있느냐고 비판한 것은 목숨을 건 꾸짖음이었다. 지금의 이 나라 고위공직자들로서는 꿈속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직언일 것이다. 조선이 500년 이상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가 원칙에 어긋나면 이처럼 임금도 직접 꾸짖었던 선비들의 의기에 있었다. 윤지완 등의 이런 격렬한 반발 때문에 숙종은 왕세자를 교체하지 못하고 사망했고 세자가 즉위했으니 그가 바로 경종이었다.

그런데 윤지완의 이런 행위는 돌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漢)나라의 평제(平帝)는 임연(任延)을 무위태수(武威太守)로 제수하고 직접 만나서, “상관(上官)을 잘 받들어서 명예를 잃지 말라”고 경계했다. 임연은 “신은 듣건대 충신은 개인을 섬기지 않고, 개인을 섬기는 사신(私臣)은 불충한 것입니다. 바른 길을 걸으면서 공(公)을 받드는 것이 신하의 절개이지 상하가 옳고 그름 없이 따른다면 폐하의 복이 아닙니다. 상관을 잘 받들라고 하신다면 신은 감히 조칙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라고 거절했다. 평제는 탄식하면서, “경의 말이 옳도다”라고 받아들였다.(후한서 ‘순리(循吏ㆍ좋은 관료) 임연 열전’)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이 편찬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비롯해서 명나라 고준(高峻) 등이 편찬한 소사(小史) 등에는 이 대목의 사(私)자가 화(和)자로 되어 있다. 즉 “충신은 임금과 잘 지내지 못하고, 임금과 잘 지내는 신하는 불충한 것입니다(忠臣不和,和臣不忠)”라고 적고 있는 것이다. 임금에게 쓴 소리하는 신하가 충신이고 임금의 비위를 맞추는 신하는 개인을 섬기는 사신(私臣)이거나 임금의 비위나 맞추는 화신(和臣)이라는 비판이다. 명말청초(明末淸初)의 학자였던 황종희(黃宗羲)는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에서 “나아가서 임금을 섬길 때 천하의 일을 일삼지 않으면 임금의 종이고, 천하의 일을 일삼으면 임금의 사우(師友ㆍ스승이자 벗)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도부 오찬 때 “각하”라는 호칭을 세 번씩이나 써서 식자들의 눈총을 샀던 이완구 원내대표가 예상대로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제청되었다. 전근대적 ‘각하’ 발언부터 사과하면서 앞으로는 대통령만 바라보는 사신(私臣)이나 화신(和臣)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인 국민만을 섬기는 국신(國臣)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청문회에 임한다면 백성들이 땅속에 파묻어 버린 지 오래인 이 땅의 고위공직자에 대한 기대를 조금은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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