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ening and Speaking
최근 몇 년 사이에 대한민국에서는 소통이라는 단어가 전례 없이 많이 쓰이고 있다. 과거에는 communication이라는 영어 단어가 쓰이거나 마땅한 대체어조차 없었는데 새로운 낱말인양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소통은 결코 반가운 단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쌍방이 대화는 하는데 한쪽이 다른 쪽 말을 듣지 않거나 무시해서 생기는 ‘먹통’이나 ‘불통’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쌍방이 말이 잘 통하는데 소통이 강조될 리가 없지 않은가.
쌍방의 dialogue나 conversation 혹은 communication은 대화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고 ‘정말 말이 통하는가’를 논하는 소통의 개념을 영어로 말하면 meta-communication이다.
영어에서도 가끔 “We’re not communicating”이라는 말이 오갈 때가 있다.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다. “There is no 소통 between us”인 셈이다. 미국에선 부부싸움을 할 때도 이 말이 나온다. “Why are you crying?”이라고 말하는데 “Nothing is wrong”으로 해석하는 것도 불통의 사례다. 결국 부부는 “We’re not communicating”이라는 불만이 폭발한다. 분명히 대화를 하는데 말은 통하지 않는 상황이 오면 우리는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소통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상황은 이미 쌍방간 먹통이 됐을 때이기 마련이다. 불통에 대한 절규이고 분노의 단어인 셈이다. 소통을 강조하는 사회는 그래서 이미 불통 사회가 됐음을 뜻한다.
소통이라는 단어 meta-communication은 1970년대 Gregory Bateson이 만든 용어다. 대화에서 표현 자체뿐 아니라 표현을 둘러싼 목소리, 제스처, 얼굴 표정 등의 속뜻까지 헤아려야 소통이 된다고 봤다. 대화하는 시늉만 내고 상대의 속뜻을 헤아리지 못하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통령이 새해 들어 수석비서관들을 모아 놓고 소통을 강조했다. 그런데 여론조사에서는 대통령을 두고 소통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높게 나온다. 이 또한 “We’re not communicating”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다. 스스로 불통, 먹통을 하면서 소통을 강조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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