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호주 아시안컵이 역대 최고 수준의 흥행 대회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안컵 공식 트위터에는 29일(이하 한국시각) “2경기만을 남겨놓은 가운데 56만 명이 넘는 팬들이 빛나는 2015 아시안컵을 즐겼다. 참여해준 모두에게 감사한다”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1988년 대회 이후 27년 만에 결승에 오른 한국은 55년만의 우승컵을 노리고 있어 국내 축구팬들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아시아 대회지만 월드컵보다 재미있다”는 반응이 지배적인 이번 대회의 흥행 요인 7가지를 정리했다. 읽는 재미를 위해 각각의 요인들을 4행시로 풀어봤다.
지난 20일까지 총 24경기가 치러진 이번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는 단 한 차례의 무승부도 나오지 않았다. 이로서 이번 대회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각 대륙별 축구연맹이 주관하는 메이저 대회 중 가장 많은 경기에서 승부가 갈린 대회로 기록됐다.
이 과정 속에서 가장 눈에 띈 추세는 중동 국가들의 고의적 시간 지연행위, 이른바 '침대축구'가 크게 줄어든 점이다. AFC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판정 기준 강화 항목에 '침대축구 철퇴'를 집어넣어 경기 시간을 지연 행위를 엄격히 제재할 뜻을 전했고, 중동 팀들의 자발적 노력이 더해져 한층 매끄러운 경기들이 진행됐다. 이와 함께 조별리그 순위 산정 시 승점이 같을 경우 골득실 대신 승자승 원칙을 먼저 적용해 8강 진출을 이미 확정한 조 1·2위 팀들도 마지막까지 승부를 낼 수 있도록 유도한 AFC의 숨은 노력도 돋보였다.
심판들의 군더더기 없는 판정 역시 대회에 재미를 더했다. 심판들의 판정 운영 능력이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에 비해서도 높다는 게 국내 심판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권종철 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은 “메이저급 대회에서 판정에 대한 항의가 이 정도로 없었던 적도 드물다”면서 “매끄러운 판정으로 실제 경기시간(Actual Playing Time)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90분의 정규 경기시간 중 실제경기시간을 60분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실시해 온 AFC의 캠페인(60 Minutes. Don’t delay. Play!)도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 AFC는 특히 이번 대회에서 침대 축구 철퇴 외에도 판정항의, 거친 태클, 핸드볼, 홀딩 등 부상으로 인해 경기가 지연될 수 있는 파울들을 엄히 제재키로 천명한 바 있다. 여기에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선보였던 ‘배니싱 스프레이’를 도입해 한 발이라도 더 앞에 서려는 수비 선수들과 9.15m 간격을 유지시키려는 심판 사이의 불필요한 실랑이를 줄였다.
선수들도 시청자도 지치기 일쑤인 연장전에서 펼쳐진 극적인 명승부들도 아시안컵 열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첫 테이프는 한국이 끊었다. 8강 첫 경기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전후반을 0-0으로 마쳤지만 연장 전반 14분과 연장 후반 14분 터진 손흥민의 골로 2-0 승리를 거뒀다. 두 골 모두 심판의 휘슬이 울리기 직전 터진 골이라 더 극적이었다. 1-1로 전후반을 마친 후 치른 이란과 이라크의 연장전 승부는 이번 대회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다. 이란은 한 명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끝까지 따라잡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라크가 연장 전반 3분 추가골을 터뜨리자 10분 뒤 이란이 동점골로 따라잡았고, 연장 후반 8분 이라크가 또 추가골을 넣어 달아나자 경기 종료직전 구차네자드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3-3으로 경기를 마쳤다. 승부차기에서도 8번째 키커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지만 결국 승리의 여신은 이라크를 향해 웃었다. 일본과 아랍에미리트(UAE)의 8강전 역시 1-1로 비긴 뒤 돌입한 연장전에서 승부를 내기 위해 맹공을 펼친 일본과 끝까지 물고늘어진 UAE의 저력이 돋보였다. 조별리그에서도 ‘뒷심’이 승부에 재미를 돋웠다. 전체 득점(61골) 중 약 44%에 해당하는 27골이 전·후반 막판 15분 동안 터졌다.
명승부가 이어지자 흥행 성적도 좋았다. 조별리그 24경기에 총 39만5,896명의 축구팬이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당 평균 관중은 1만6,496명이나 됐다. 4년 전 카타르 대회(1만2,006명)와 비교하면 경기당 4,400여 명이 늘어난 셈이다. 시드니에서 열린 오만-호주전(50,276)과 한국-호주전(48,513) 두 경기에만 약 10만 명에 육박하는 관중이 들어차 ‘흥행 대박’을 쳤다. 토너먼트로 갈수록 흥행엔 더 불이 붙었다. 한국과 호주전에는 무려 36,053명의 관중이 몰리는 등 8강, 4강전 모두 자국 경기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경기장이 들어찼다. 2차세계대전 이후 적극적인 이민정책으로 외국인들의 유입이 크게 늘어난 점도 흥행요인 중 하나다. 실제로 호주 인구의 약 20%가 외국인이고, 최근 10년 사이에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급격하게 급증했다. 같은 기간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 중 하나인 호주오픈 테니스, 국제크리켓협회(ICC)월드컵이 열린 점을 감안하면 호주의 축구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 지를 가늠케 한다. 결승전은 84,000명 수용 규모의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중계 기술도 재미있는 경기를 더 박진감 넘치게 만드는 데 한 몫 했다. KBSN 김관호 스포츠국장은 “개최국 호주는 중계 장비 선진국”이라며 장비 수급의 편의성을 우선적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아시아에서 스포츠 빅 이벤트가 열릴 경우 대부분 호주에서 중계장비를 임대할 정도”라며 호주의 기술적 중계 수준을 높이 평가 한 김 국장은 “경기당 10대 가량의 중계카메라를 사용했던 과거와는 달리 18대 정도의 카메라가 지원 된 점도 중계에 박진감이 더해진 요인”이라고 밝혔다. 특히 8강 토너먼트에서부터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머리 위에서 촬영하는 ‘스파이더캠’이 도입돼 중계의 질을 한층 높였다. 경기장 지붕에 설치된 와이어를 통해 움직이는 ‘스파이더캠’은 지난 2006년 일본에서 열린 FIFA 클럽월드컵에서 시범 도입된 뒤 FIFA 및 유럽축구연맹(UEFA)주관 대회에서 주로 쓰였고, 아시안컵에서는 지난 2011 카타르 대회 때부터 사용됐다.
시차가 적고 경쟁 종목이 없는 점도 국내 스포츠 팬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은 이유다. 대회가 열리고 있는 호주와의 시차는 2시간으로 모든 경기가 한국인의 활동시간대인 오후에 펼쳐졌다.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시차 7시간)을 시작으로 2011 카타르 아시안컵(시차 6시간) 2012 런던올림픽(시차 9시간) 2014 브라질월드컵(시차 11시간) 등 최근 5년 사이 한국이 참가한 대부분의 메이저 축구대회가 한국에선 늦은 밤과 새벽 시간대에 중계됐다. 55년만의 우승 여부를 결정짓게 될 결승전 역시 휴일인 31일(토) 오후 6시에 펼쳐지는데다 프로야구 등 이슈 분산 요인도 없다. 무엇보다 ‘결과가 좋은 승부’가 한국 축구팬들의 흥을 돋운다. 한국은 조별리그 첫 경기인 오만전을 시작으로 5경기 7득점 무실점을 기록했다. 경기 내용만큼 결과도 좋았던 슈틸리케호의 무실점 전승 행진이 마지막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국민들의 관심이 쏠린다.
사족: 무한~도전(무엇보다 한국우승 도도하게 전해주게)!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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