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많이 이사를 다니다 정착하게 된 집은 산 중턱에 있는 하얀색 주택이었다. 송아지 만한 순둥이 골든리트리버 토토와 정월 초하루에 우리 식구가 되어 하루라는 이름을 붙여준 백구가 뛰어다니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집이었다. 봄에 꽃시장에서 꽃을 사다가 많이 심었다. 모란, 수선화, 양귀비, 수국… 땅을 고르면서 지렁이가 나오거나 공벌레가 나와도 놀라지 않았다. 꽃밭에 개들이 들어가서 꽃대를 꺾어 놓아도, 다시 지지대를 세워주면 신기하게 더 튼튼해졌다. 어느 꽃이든 참 보드라웠다. 내 방 창 밖에는 아빠가 심어 준 벚꽃도 있었다. 벚꽃이 질 때 그 장면을 바라 보면서 해금을 하노라면, 눈물이 났다. 뭉클하도록 아름다웠다. 여름이 되면 뒷산에서 부는 바람이 시원했다. 숲에 가면 작은 개울이 있는데, 토토랑 산책을 가면 어김없이 거기에 주저 앉았다. 목욕은 싫어하면서 물놀이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가을에는 낙엽송이 멋들어지게 색을 갈아 입는다. 초봄과 늦가을의 낙엽송은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느껴진다. 초봄의 그 싱그러운 연두색과 늦가을의 그윽한 노란색… 나는 낙엽송을 좋아한다. 하지만 산 중턱에 있는 집이 눈이 많은 겨울에 어떻게 되는지는 몰랐다. 봄, 여름, 가을 까지는 기가 막히게 멋진 집이었으니까…
그 해 겨울에는 참 눈이 많이 왔다. 이사한 첫 해 꽤 많은 눈이 내린 날 아침. 난리가 났다. 차를 가지고 내려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스키장의 슬로프처럼 경사가 급한 우리 집은 처음 오는 사람들은 죄다 무서워한다. 출근을 해야 하는 아빠와 동생은 중무장을 하고 길을 나섰다. 구두는 가방에 넣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털장화를 신고서. 그 날의 무용담은 처참했다. 아빠는 넘어지면서 코트가 찢어지고, 동생은 주욱 미끄러지면서 팔 다리를 다쳤다. 그로부터 얼마 후 휴일, 가족들이 모두 차를 타고 나가고 있었다. 조금은 눈이 남아 있는 경사를 다 내려와서 이제 한숨 돌리고 모퉁이를 도는데, 그만 차 바퀴가 휙 돌아갔다. 그때부터 차는 제어가 되지 않았고, 그대로 벽을 들이 받고 멈추었다. 꽝! 눈 앞이 아찔했다. 차 앞 쪽에서는 연기가 나고, 매캐한 연기가 코로 들어왔다. 차 밖으로 뛰어나왔다. 다행히 모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정말 많이 놀랐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눈이 오면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운 것 같으면, 차를 쓰지 않았다. 혹시 나가 있는데 오후 늦게 눈이 오기 시작하면 비상이었다. 집에 어떻게 들어올 것인지 몇 번이고 상황을 알려주거나, 산 아래까지 걸어서 내려가 본 다음, 어디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 올 수 있는지 상의하기도 했다. 아빠나 동생이 구두를 신고 나간 날에 눈이 오면, 신고 올라올 수 있는 털장화를 들고 마중을 나가기도 했다.
이사를 가야 하는 건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 속에서 우리는 애가 탔다. 식구들이 편히, 아니 적어도 무탈하게 집에 들어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원망도 터져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 눈이 많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아빠를 마중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주황색 가로등 아래 빛을 받으며 날듯이 내리는 눈송이들. 눈이 부셨다. 경사를 걸어 올라오느라 땀은 나고, 귀는 시리고, 힘을 주며 걸어서 허벅지가 뻐근한데, 하늘에서는 하얀 눈이 춤을 추며 내려오고 있었다. 내가 내려오면서 만든 발자국도 벌써 지워버린 눈. 귀 기울이면 눈 내리는 소리도 들릴 듯 조용한 길. 잠시 멈추고 서서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있으니 걱정이 다 사라져 버렸다. 조금 힘들고 불편하면 어때? 좀 더 조심하고, 천천히 다니면 되지. 눈 오는 밤이 얼마나 예쁜지 사람들은 알까? 송글송글 땀이 난 이마에 눈이 닿으면 얼마나 기분 좋게 차가운지. 눈을 밟을 때 얼마나 사근사근한 소리가 나는지. 쌓인 눈 위로 난 고양이의 작은 발자국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사람들은 알까?
가끔 그 밤을 생각한다. 나를 힘들게 하던 바로 그것이 한 순간에 빛나는 기억으로 바뀌던 그 밤을.
꽃별 해금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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