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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보육 노동

입력
2015.01.2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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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혈연 없는 사람들 중 내 자식을 가장 사랑해주는 이는 보육 교사인지 모른다. 대부분 여성인 그들은 고립된 채 후려쳐진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이다. 돈은 고용주가 가져간다. 상당수가 밥그릇 보전 위해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에 반대하고 종교 권력과 결탁해 지방 토호화한 기득권 세력이다. 정치인 관심은 오직 표다. 정작 아동 복지는 이들의 안중에 없다. 사진은 최근 서울 신길동의 한 어린이집에 불쑥 몰려 가 빈축을 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어쩌면 혈연 없는 사람들 중 내 자식을 가장 사랑해주는 이는 보육 교사인지 모른다. 대부분 여성인 그들은 고립된 채 후려쳐진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이다. 돈은 고용주가 가져간다. 상당수가 밥그릇 보전 위해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에 반대하고 종교 권력과 결탁해 지방 토호화한 기득권 세력이다. 정치인 관심은 오직 표다. 정작 아동 복지는 이들의 안중에 없다. 사진은 최근 서울 신길동의 한 어린이집에 불쑥 몰려 가 빈축을 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대개 보육 교사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다. 사랑이 무료라선가. 제2 엄마 대접이 형편없다. 간절해도 잘리는 을 신세다. 거개 갑한테 남 자식은 돈벌이 대상이다. 복지 기획은 실패다.

“보육노동을 사회화한다는, 꿈같은, 때로는, 사회주의적인 기획으로 여겨지는 일. 페미니스트들의 염원 같기도 한, 가사노동의 사회화 중 핵심을 차지하기도 하는 보육노동의 사회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구나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보육노동은 사회화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청노동으로 전가된다. (…) 전통적으로 부모나 가족 성원이 사적 영역에서 맡았던 아동보육이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의 일부로 포섭되면서, 그것은 ‘노동’의 문제라는 덫에 빠진다. (…) 보육에 노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기묘한 형태의 노동, 즉 ‘돌봄노동’ 말이다. (…) 이렇듯 가사노동이 떠맡던 ‘보육’이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복지와 맞물려 변질되었다. 꿈꾸던 보육의 ‘사회화’가 아니라 노동으로, 그것도 위탁노동으로. 심지어 교육기관의 하청사업으로 전가되고 확장되었다. (…) 돌봄은 성별화된 노동, 즉 여성의 노동이었기에 여성의 일방적인 노동력 제공에 의지했고 ‘모성’담론으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이제 노동자가 보육을 떠맡는다고 해서 이전에 가사노동이었고, 사회적 부불노동이었고, 인정받지 못했던 보육의 기능이 사회적 가치를 월등하게 얻게 되지는 않는다. 보육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노동이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지불노동이 된 보육노동은 불안정노동이고, 저임금노동이고, 하층노동이다. 말하자면 성별 분업체계의 유제와 불안정노동의 이중질곡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돌봄 혹은 보육노동이다. 최근 임신 8개월된 보육교사의 돌봄아동 학대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 자신의 아이를 가정이 아니라 보육원에, 유치원에, 학교에 맡기는 부모는 얼마나 알까. 자신의 아이가 어떤 ‘돌봄’노동자의 손에 맡겨져 있는지? 그들 돌봄노동자, 혹은 교사가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떤 노동조건하에서 자신의 아이를 ‘돌봄’노동하고 있는지? 정말 돌봄노동이 불가피하다면, 즉 부모의 돌봄노동 일부를 노동자들에게 위탁하고, 나아가 이를 학교라는 장소에서 교육의 기능과 합치는 현 시스템이 불가피하다면 이제야말로 차분히 그들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들의 돌봄을 대행해주는 보육·교육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부모가 노동문제를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복지라는 차원에서 관심 가져야 할 이유다. 계약제 바지선장의 무책임과 부주의가 세월호 참사의 한 원인이었듯이, 아이들 돌보는 보육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역시 마찬가지다.”

-하청 노동된 ‘돌봄의 사회화’(경향신문 ‘시론’ㆍ권영숙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노동위원장) ☞ 전문 보기

“오래전 일이다. 한 복지재단이 어린이집 경영권을 넘겨받으며 교사들을 모두 1년 ‘계약직’으로 바꿔버렸다. (…) 1년 지난 뒤, 6년 동안 일했던 여교사 한 사람만 계약이 갱신되지 않았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교사는 계속 출근했다. (…)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그 교사를 업무방해 혐의로 연행해 갔다. 왜 그 교사만 해고됐을까? 어린이집 운영 비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원장에게 “아이들 과자값으로 장난하는 일이 한번 더 생기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따진 유일한 교사였기 때문이었다. 재단에서는 그 교사의 근무 행적을 낱낱이 조사해, 자질과 인품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수십쪽 자료를 만들었다. 그 안에는 “졸업장 순서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이사장님이 졸업장을 수여하다가 내빈들 앞에서 망신당하게 만들었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었다. “어떻게 된 상황이냐?”고 물으니 교사는 망설이다가 답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돈을 다 못 낸 아이들이 몇명 있었어요. 그런데 원장님이 담임인 저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 아이들 졸업장만 모두 빼 버린 거예요. 아이들은 졸업장 받겠다고 앞에 앉아 있는데… 졸업장이 거기 없을 거라고 제가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어요. 그냥 순서대로 줬어요. 그래서 순서가 틀렸던 거예요.” 교사는 설명하다가 목이 메었다. (…) ‘최종진술’ 시간에 그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유치원 선생님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자라면서 그 꿈이 한번도 바뀐 적이 없었어요. 가정환경 조사서를 적을 때마다 ‘장래 희망’ 칸에는 언제나 ‘유치원 선생님’이라고 적었어요. 제가 벌어서 공부하느라고 좀 늦게 어린이집 교사가 됐지만 정말 행복하게 일했어요. 그런데 그날… 제가 아이들 보는 앞에서 잡혀갔거든요. 내가 선생님인데… 저는 빨리 돌아가야 돼요. 보고 싶은 아이들 곁으로 하루빨리 돌려보내 주세요.” 그 선생님은 결국 대성통곡했다. (…) 한동안 노동조합이 왜 필요한지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마다 이 사건을 예로 들었다. 자기 직업을 사랑하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혼자 정의로운 일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우니까 여럿이 모여 서로 도우면서 하라고 만든 것이 바로 ‘노동조합’이라고 설명했다. (…) 어린이집 교사들이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여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경영진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상황을 개선하는 효과적인 수단일 수 있다. 노동조건이 좋아져야 우수한 자질도 요구할 수 있다.”

-어린이집 교사노조가 해법일 수 있다(한겨레 기명 칼럼ㆍ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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