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명분 '과도기 노동' 비중 커져… 최저임금 등 보호 못 받아
무급에 청소 등 허드렛일 일쑤… 인턴 보호할 제도적 장치 절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박이슬(가명ㆍ24)씨는 지난해 초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서울의 한 사립미술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 식대만 제공받고 일하는 ‘무급 인턴’이었지만, 전공을 살려 미술 관련 업종에 취직하고 싶었던 박씨는 “이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교수의 설명에 선뜻 인턴에 지원했다. 그러나 전시 큐레이팅, 미술품 관리 방법 등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출근 첫날 산산조각 났다. 박씨가 인턴 기간 내내 했던 일은 사무실 청소. 운이 좋으면 미술관 관련 자료를 엑셀파일로 정리할 뿐이었다. 박씨는 “애초에 사무직으로 알고 출근했지만 인턴 담당 직원이 전화로 ‘청소해라, 설거지해라’는 등 잡무만 지시해 두 달 간 죽도록 청소만 했다”며 “전공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어떤 교육적 업무지시를 받아본 적이 없어 자원봉사하러 온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경력을 쌓을 수 있다 해도 앞으로 무급인턴은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기업이 교육을 명분으로 기본 근로조건도 보장하지 않고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열정 페이’ 현상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이를 제어할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업무를 배우는 교육이라기보다 노동에 가까워 ‘과도기 노동’이라는 규정이다.
28일 청년유니온과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청년 과도기 노동 당사자 증언대회’에서 김민수 청년유니온 대표는 “교육에서 안정적 근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인턴과 수습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중간단계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졌다”며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성격이 강한 만큼 ‘과도기 노동자’들에 대한 근로조건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도기 노동자는 크게 ▦시용과 수습직원 ▦인턴 교육훈련생 산업훈련생으로 나뉜다. 현행법상 시용과 수습직원은 근로자로 인정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만, 인턴 교육훈련생 산업훈련생 등은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아 최저임금 적용 등 각종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이상훈 청년유니온 자문노무사는 “현실에서는 인턴의 외피를 쓰고 수습처럼 근무시킨다는 점이 문제”라며 “인턴이나 수습 등의 용어가 법적으로 규정된 용어는 아니지만 회사 매출과 관련된 업무를 한다면 노동자로 대우해야 한다”며 인턴 등에 관한 보호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프랑스 등은 명료한 기준을 들어 인턴 등 과도기 노동자를 일반 노동자와 구분해 보호하고 있다. 인턴제도를 처음 도입한 미국은 ‘인턴이 정규 근로자의 일을 대체하지 않는다’ ‘사용자가 인턴 활동으로 인해 어떠한 직접적 이득도 얻어서는 안 된다’는 등 6가지 인턴 기준을 마련해 이 기준에서 벗어나면 근로자로 간주, 최저 근로조건을 충족하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인턴 근무 기간을 최대 6개월로 제한하고 ▦2개월 이상 근무부터 사회보장급여의 15% 이상(2014년 기준 523.26유로?약 7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인턴 노동자에 대한 권리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해 과도기 노동을 보호하고 있다.
배트맨D 패션노조 대표는 “(인턴 노동자 보호에 관한) 제도 없이 사람에게만 인턴 관리를 맡겨놓은 점이 문제”라며 “이 시점에서 효과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인턴제도 악용으로) 더 큰 고통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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