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동부 끄트머리 메인주 포틀랜드의 27일 밤 풍경.
눈발에 부딪쳐 시퍼래진 수은등 불빛은 거리를 밝히지 못하고, 매서운 눈보라는 언제든 집어삼킬 태세로 행인을 포위한 채 떠돈다. 멀리 콩알만하게 보이는 빨간 빛들은 차량 미등이거나 신호등 불빛일 것이다. 거칠고 몽환적인 밤의 한 순간이 도시를 먼 은하계의 풍경처럼 낯설게 만들어 놓았다.
저 곳은 미국 작가 스티븐 킹의 고향이다. 그의 소설들, 이를테면 미스트같은 것들을 볼 때면 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저 메인 주의 인적 없는 들판과 호숫가, 그리고 짙고 끝없는 침엽의 숲을 떠올리곤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괴물이 튀어나와도 비현실적이라고 시비 걸 수 없게 만드는 체념적 긍정의 힘이 그 풍경 속에, 킹의 소설 속에 있다는 생각.
저 날 메인 주에는 최고 45cm의 눈이 내렸다고 한다. 시체도 파묻을 수 있는 높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포틀랜드=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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