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좋은 시설로… 장기기증" 유언
동반자살 시도 실패하자 홀로 간 듯
장애인 언니를 돌보며 근근이 살아온 2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언니를 부탁한다며 장기 기증과 월세보증금의 사회 환원을 희망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지난 24일 오전 10시 13분쯤 대구 수성구 황금동 한 식당 주차장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류모(28ㆍ여)씨가 번개탄을 피워놓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식당 주인 김모(28)씨는 “가게 문을 열고 뒷편 주차장으로 갔더니 차 운전석에 한 여성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어 바로 신고했다”고 말했다. 차량 안에는 현금 1만3,000원이 든 지갑과 휴대전화 등이 남아있었다.
류씨는 스마트폰 메모장에 남긴 유서에 ‘언니(31)와 같이 있어도 힘들고, 떨어져 있어도 힘들다. 할 만큼 다했는데 지친다. 내가 죽더라도 언니는 좋은 시설보호소에 보내달라. 장기는 다 기증하고 월세보증금도 사회에 환원하기 바란다’고 적었다.
광주에 살았던 류씨에게는 언니가 유일한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류씨가 태어난 1987년 숨졌고 어머니는 4년 후 재가하면서 집을 나갔다. 언니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길도 잃어버리고, 말도 어눌하며 느닷없이 소리도 지르는 등 장애 증세를 보이다 2001년 지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할머니와 삼촌은 그래도 언니를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다.
언니는 2004년 가출한 후 광주와 경남 통영, 부산의 장애인시설을 떠돌다 2012년 7월 대구 남구의 시설로 자리를 옮겼다. 2006년 대구로 온 류씨도 대형마트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언니에게 옷과 음식 등을 사주며 실질적인 보호자 역할을 했다.
병뚜껑으로 몸을 긁는 등 자해를 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한 언니는 이달 13일 시설을 나와 동생과 한 집에 살게 됐다. 보증금 500만원, 월세 36만원짜리 원룸에 살던 류씨는 이날 언니와 제주도 여행을 하며 “같이 죽자”고 권유했다고 한다. 지난 20일에는 빌라 방에서 착화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으나 연기를 본 주민의 신고로 구조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르바이트로 약간의 돈도 모은 류씨가 장애가 전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언니에게 절망해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류씨를 발견한 시간이 늦어서 유언처럼 장기를 기증하는 것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대구=배유미기자 yu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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