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25일 한 언론인터뷰에서 “힘이 들더라도 지난해 실패한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을 올해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주민세는 모든 주민이 내는 회비 성격이므로 서민증세라 할 수 없다”며 “지방자체단체장들이 선출직이어서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했다. 지자체의 심각한 재정난을 직접 설명해 박근혜 대통령의 결심도 받아냈다고 했다. 정작 행자부는 하루 뒤 “올해는 자치단체의 강한 요구와 국회 협조가 없는 이상 지방세법 개정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정 장관 발언을 뒤집었다. 이 정부의 한심한 작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촌극이 아닐 수 없다.
민감한 세금 인상 문제를 그냥 툭 던진 정 장관의 가벼운 처신은 이해하기 어렵다. 정말 지방 재정난으로 지방세 인상이 필요하다면 합당한 근거와 논리로 접근해도 한참 모자랄 상황인데 애드벌룬 띄우듯이 해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담뱃세 대폭 인상에 연말정산 세금 폭탄으로 가뜩이나 쪼그라든 서민의 호주머니 사정이나 들끓는 국민 정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앞세운 결과다.
더군다나 지난해 입법예고안(案)으로 보면 주민세는 지자체에 따라 기존보다 2~5배 인상이 된다. 비록 금액이 크지 않다지만 서민 가정에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또 주민세는 회비 성격이라서 증세가 아니라니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대개 수십만원씩 나오는 자동차세를 최대 100%까지 올린다면 흔한 표현으로 ‘세금 폭탄’이 될 것인데 부서 내부의 공감대조차 얻지 못하고 장관이 불쑥 뱉을 말이 아니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져 예상했던 만큼 세금이 걷히지 않고, 중앙정부 보조금 의존도가 높은 지방정부의 재정난이 더 심화할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수는 부진한 반면 복지수요는 계속 늘어 중앙이나 지방정부 살림이 모두 어려운 형편”이라며 지방교부세와 교육재정 교부금 등 지방교부세제 개혁을 주문했다. 산정 기준이나 배분 방식에서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온 지방교부세이다 보니 합리적 조정과 함께 재정부족을 조금이라도 메울 의도로 보이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경기회복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증세와 복지 범위 조정 근본적인 처방 없이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세수부족 난관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증세 없는 복지’만 강조하며 거듭 꼼수ㆍ땜질 처방에 의존하고 있다. 국민감정을 상하게 하고 정책 불신을 초래하는 자충수다. ‘대통령의 결심’ ‘십자가’ 운운하며 주민세ㆍ자동차세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가 하루도 못 가고 번복하는 소동은 현 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전혀 모르거나 아예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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