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유대인협회 테러 용의자 처벌 싸고 이란과 뒷거래 의혹 제기
의회 증언 앞두고 욕실서 총에 맞아 정부는 자살로 발표… 의구심 증폭
한 검사의 죽음이 아르헨티나를 흔들고 있다. 유대인과 테러, 이란,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 인화성 강한 단어들이 얽힌 죽음이다. 무엇보다 현직 대통령의 거취와 연계된 의문사여서 아르헨티나 안팎이 떠들썩하다.
의문사의 당사자는 알베르토 니스만(51) 검사다. 그는 의회 증언을 앞둔 지난 18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재 자신의 아파트 욕실에서 머리에 총을 맞은 채 숨졌다. 앞서 그는 대통령이 한 테러사건과 연루됐다는 내용을 담은 289쪽 조사 보고서를 14일 제출했다. 경찰은 아파트 문이 안에서 잠겨 있고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없다며 니스만이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니스만은 1994년 발생한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유대인친선협회 건물에 폭탄이 터져 85명이 숨지고 300여명이 다친 사건으로 2006년 조사를 맡았다. 니스만은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경유해 테러를 지시했다며 이란 인사들을 기소했다. 2007년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 등 이란 관리 5명이 국제 수배 명단에 올랐다.
니스만의 칼날은 최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에게 향했다. 니스만은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곡물 수출과 석유 수입을 조건으로 이란 용의자 8명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밀약을 이란정부와 체결하도록 승인했다는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다. AP통신에 따르면 보고서는 수백 시간의 전화 통화 내용을 기초로 작성됐다.
니스만의 타살 정황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니스만의 사망 당시 아파트 문이 거의 잠겨있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니스만의 손에 화약 흔적이 남아있지 않고 유서를 남기지 않은 점도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니스만이 죽자마자 아르헨티나 국가안보장관 세르히오 베르니가 현장에 즉각 나타난 점도 의문을 더한다. 니스만의 죽음을 첫 보도한 현지 일간지 기자가 신변 위협을 이유로 국외 피신하며 의혹은 커지고 있다.
조사 보고서 제출 뒤 두문불출하고 있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오락가락 발언도 의구심을 사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지난 1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니스만은 정부 음해세력의 노리개라며 밀약 연루 혐의를 부인하면서 니스만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단정했다. 22일에는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니스만을 이용했고, 그 뒤 니스만이 죽기를 원했다”는 아리송한 어조로 타살설을 제기했다.
여론은 악화일로다. 현지 컨설팅회사 곤살레스&바야다레스 조사에 따르면 페르난데스에 대한 긍정평가는 29.1%로 지난 12월보다 4%포인트 떨어졌다. 아르헨티나는 10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