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관 위원장 사퇴 종용 논란에 야당 "문화예술 탄압·월권 행위"
영화계는 "다이빙벨 상영 보복인가"… 축제 참여·영화 촬영 보이콧 움직임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 대한 부산시의 자진 사퇴 압박이 부산시와 영화계의 갈등, 정치권의 대립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996년 막을 연 이래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영화제로 자리잡은 부산영화제의 명성과 가치가 지자체의 압박으로 훼손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영화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26일 정경진 부산 행정부시장은 “사퇴를 공식 요구한 적이 없고 영화제 측과의 협의과정이 사퇴 종용으로 비친 것은 불필요한 오해”라며 긴급 진화에 나섰다.
앞서 24일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지도 점검 결과 ▦폐쇄적인 직원 채용 방식 ▦방만한 재정 운영 ▦프로그래머의 독단적인 작품 선정 등 문제가 있었다며 이 위원장의 거취를 비롯한 인적 쇄신 등 조직 혁신 방안과 영화제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것을 영화제 집행위원회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산영화제는 “부산시로부터 공식 요구를 받지 못했다”며 “공식 요구가 오면 당연히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제 측은 부산시의 지적에 대해 ▦최근 2년간 정규직원 전원을 공개 채용했고 ▦방만한 재정 운영은 착오나 단순 과실을 과장한 표현이며 ▦프로그래머의 주관적 판단과 독립성 보장은 영화제의 정체성 확립의 절대적 조건이라고 해명하며 “부산시가 영화제와 합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집행위원장의 거취를 언급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부산시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놓고 영화제와 갈등을 빚어왔다. 문체부와 부산시는 직간접적으로 영화제에 ‘다이빙벨’ 상영 취소를 요구했으나 영화제 측은 예정대로 상영했다. 이 위원장은 당시 기자들을 만나 “문체부로부터 ‘다이빙벨’을 상영할 경우 국고 예산(15억원)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가 사실이 아니라고 번복한 적이 있다.
부산시가 이 위원장에 사퇴를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자 새정치민주연합은 26일 “문화예술에 대한 명백한 탄압이며 월권 행위”라고 질타했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내년 2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부산영화제 위원장에게 사퇴 압력을 넣은 것이 국제적 망신거리가 될까 걱정”이라며 “서병수 부산시장은 영화예술계에 대한 일체의 정치적 압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영화계도 이날 부산시의 사퇴 종용을 철회하라며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등 12개 영화 단체는 “이번 사퇴 권고가 ‘다이빙벨’상영에 대한 보복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표현의 자유를 해치고 영화제를 검열하려는 숨은 의도가 결국 영화제의 독립성을 해치고 19년간 이어온 정체성과 존립마저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금과 같은 사태가 계속된다면 부산시는 영화인의 심각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면서 “철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영화인은 연대하여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12개 영화 단체장들은 27일 긴급 회의를 갖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및 추후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부산시가 이 위원장을 해임할 경우 영화제와 부산시 영화 촬영에 보이콧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서 이번 사태가 연간 1,000억원이 넘는 경제적 효과를 낳고 있는 부산의 영화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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