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 엔트리의 최대 미스터리는 대학생 차두리의 발탁이었다. 기술이 완숙되지 않아 아버지 차범근의 후광 때문이라는 말이 많았다. 폴란드와의 1차전 후반 막판 교체출전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던 그는 16강전 이탈리아, 4강전 독일, 터키와의 3, 4위전 등 굵직한 경기에 나섰다. 유럽선수도 나자빠질 힘과 스피드로 두 명 이상 따라붙지 않을 수 없었던 그의 전술적 효용가치를 알아본 히딩크 감독의 안목이 놀랍다.
▦ 22일 우즈베키스탄과의 아시안컵 8강전 전ㆍ후반과 연장 30분, 답답하기 짝이 없었던 경기 막판, 차두리의 폭풍 같은 오버래핑에 가슴이 뻥 뚫렸다는 팬들이 많다. 우리 지역 우측 중앙에서 치고 달리자 우즈벡 수비수가 유니폼까지 끌어당겨 저지했지만 차두리의 힘을 이기지 못해 제풀에 나가떨어졌다. 가속이 붙은 스피드로 또 다른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공을 빼돌린 뒤 무인지경의 손흥민을 힐끗 보는 여유에 자로 잰 듯한 패스. 70m 드리블 어시스트는 한국 축구사에 남을 명장면이 됐다.
▦ 차범근ㆍ차두리 부자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중계를 함께했던 SBS 캐스터는 “저런 선수가 왜 월드컵 때 해설을 하고 있었을까요”라고 해 애꿎은 홍명보 감독에게 불똥이 튀었고, 차범근은 “(현역 때)내가 하던 걸 네가 하냐”며 흥분했다. 3단 로켓 부스터 같았다느니, 차붐(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시절 애칭)의 빙의니 하는 찬사가 인터넷 댓글에 수백 건씩 달렸다. 젊을 때는 스피드를 주체하지 못해 롱패스 된 공이 등에 꽂혔지만, 노쇠해져 공 속도에 맞추게 된 지금이 전성기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 아시안컵이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라는 그의 공언이 있었던 터라 “누구 마음대로 은퇴냐”는 팬들의 번복 요구가 거세졌다. 4년 전 아시안컵 당시 박지성의 은퇴 얘기에 축구협회 관계자가 “박지성의 몸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라며 만류 의사를 밝혔다. 이에 차범근은 “어린 선수들이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기를 강요당하면서 축구를 하고 있는 한국적 현실의 결과”라고 안타까워하며 박지성을 옹호했다. 체력 부담에 무릎이 시원치 않았던 서른 살의 박지성이었다. 서른 다섯 나이지만 급이 다른 체력에 완숙미가 더해진 아들에게 아버지는 어떤 조언을 할지 궁금하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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