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조합에 영화계 깜짝
美 최대 온라인 상거래업체 예술영화 노장 감독과 계약
TV시리즈 극본ㆍ연출 맡겨
배경엔 스트리밍 TV의 급성장
편성표 없이 인터넷으로 시청
케이블 TV 가입자수 추월
넷플릭스는 순이익 2배 늘어
지난 13일 세계 영화계는 깜짝 놀랐다. 아마존과 우디 앨런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만들어낸 발표였다. 의외일 수 밖에 없었다. 아마존은 미국 최대 온라인 상거래업체다. 앨런은 뉴욕을 기반으로 예술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이다. 양쪽이 손을 잡고 세상에 내놓을 상품은 텔레비전(TV) 시리즈다. 앨런은 젊은 시절 방송작가로 잠시 활동했을 뿐 TV와는 거리가 멀고도 멀다. 영화 연출과 출연에 생의 대부분을 바쳤다. 앨런은 아예 TV를 보지 않는다는 소문도 떠돈다.
앨런이 극본을 쓰고 연출한다는 사실을 빼고 정해진 것은 편당 30분이라는 방송 분량이다. 어떤 내용이 담길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몇 편이나 방송될지 정해지지도 않았다. 시작부터 장단도 맞지 않고 있다. 앨런은 “아마존과 어떻게 계약한지 모르겠고 아무런 생각도 없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확신도 못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아마도 (아마존 스튜디오의 부사장) 로이 프라이스가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프라이스 부사장은 “난 앨런의 캐릭터와 코미디가 TV로 아름답게 변형될 것이라 항상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팬들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업계는 일치된 분석을 내놓는다. 앨런의 아마존행은 ‘스트리밍 TV’라는 급류에 휘말린 방송산업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명 영화감독의 TV행은 이젠 뉴스가 아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칸국제영화제 최고상(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천재 대우를 받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2012년 ‘쇼를 사랑한 남자’를 마지막으로 잠정적인 활동 중단에 들어갔다. TV시리즈를 만들기 위해서다. ‘파이터 클럽’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나를 찾아줘’ 등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핀처는 제법 오래 전부터 안방까지 활동 무대를 넓혔다. 인기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시리즈의 제작과 함께 일부 연출까지 맡으며 화제를 모았다.
유명 감독들이 최근 더욱 TV시리즈에 몰리는 이유는 방송가의 경쟁 심화다. 스트리밍 TV가 뛰어들면서 기존 지상파TV와 케이블TV가 양분했던 방송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스트리밍(Streaming)은 파일을 따로 받아두지 않고 인터넷으로 방송과 영화, 노래를 실시간으로 이용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스트리밍TV의 경우 편성표에 구애 받지 않고 시청자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즐길 수 있어 방송계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잡고 있다.
선구자는 미국의 넷플릭스다. 2009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해 공룡으로 자랐다. 가입자 수는 5,700만명(미국 3,900만명, 해외 1,800만명)으로 미국 최대 케이블TV 컴캐스트 가입자 수(2,200만명)를 이미 추월했다. 지난해 4분기 순이익(8,340만달러)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폭발적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다.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를 제작하고 방송했다. 단순한 영상 전송 회사가 아닌 엄연한(그러나 새로운 의미의) 방송국인 셈이다.
넷플릭스의 성공은 거대 정보통신회사들을 자극했다. 아마존도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이미 개봉한 영화나 방송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도록 했다. 2010년엔 아마존 스튜디오를 설립해 자체 방송물을 공급하고 있다. 스트리밍TV가 돈이 되자 ‘방송국’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아마존이 만든 TV시리즈는 벌써 성과를 냈다. ‘트랜스패런트’가 지난 11일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코미디ㆍ뮤지컬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제프리 탬보어)을 수상했다. 아마존은 한 달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만들어 극장 개봉 4~8주 뒤 아마존 홈페이지에 독점 공개하겠다는 계획도 최근 밝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 단편 영상물에 투자하며 스트리밍TV 진출을 노리고 있다. 검색엔진 야후는 야후스크린을 만들어 인기 코미디물 ‘커뮤니티’의 여섯 번째 시즌을 독점 ‘방송’하기로 했다.
치열한 경쟁은 우수 인력 확보로 이어지고 있다. ‘글래디에이터’ 등을 연출한 리들리 스코트는 아마존을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소더버그 감독도 아마존과 함께 코미디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배우 시시 스페이식과 티나 페이를 각각 내세운 새 시리즈물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아마존은 앨런의 영입만으로도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인지도를 높이게 돼 시작부터 남는 장사라는 평가가 따른다.
스트리밍TV의 발달로 방송 제작 형태도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국가별로 별도로 제작하거나 시간을 두고 방송되던 방식은 이미 구식이다. 영국과 미국, 미국과 유럽 등 대서양을 건넌 공동제작이 늘고 있고 동시 방송도 예사가 되고 있다. 영국 방송사 채널4와 미국의 케이블TV AMC는 TV시리즈 ‘휴먼스’를 공동 제작했다. 앨런의 TV시리즈는 아마존 홈페지를 통해 미국과 영국, 독일에서 동시 시청이 가능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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