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회복 위해 국채 대량 매입, 예상 뛰어넘는 자금 풀어
디플레이션 막는 극약처방, 글로벌 금융시장 일단 호조
우리 경제도 유럽 수출 증가 기대감, 일각선 "효과 크지 않을 것" 전망
유럽중앙은행(ECB)이 22일(현지시간)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초대형 양적완화 단행을 결정하며 침체에 빠진 유로존 경기 회복에 나섰다. 당초 예상치(5,000억~6,000억유로)의 두 배에 달하는 1조1,400억유로(1,435조원) 규모의 유동성이 시중에 풀리게 되면서 유럽은 물론이고 글로벌 경제에도 큰 파급력을 미칠 전망이다.
ECB가 대규모로 국채를 사들여 경기 부양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이 이러한 전면적 양적완화로 효과를 보는 동안에도 ECB는 초저금리 정책, 장기대출프로그램 등 은행을 통해 기업 저리 대출을 유도하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유로존 맹주인 독일이 자국 부담을 들어 유동성 확대보다 구조조정을 주장해온 영향도 컸다. 그러나 유로존 경제가 제로에 가까운 성장률을 거듭하는 가운데 급기야 지난 달엔 소비자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디플레이션 우려가 심화되자 미국식 양적완화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시장은 ECB의 양적완화 개시를 반기고 있다. 유럽 자금의 유입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금융시장이 특히 그렇다. 양적완화 기대감에 유럽 증시는 독일이 연일 신고가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보였고, 뉴욕 증시도 21일까지 4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막대한 돈 풀기가 유로존 실물경기 회복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유럽팀장은 “ECB의 양적완화 규모가 1조유로를 웃돌 경우 현행 0~0.1% 수준인 유로존 분기 성장률이 0.3% 내외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우리 경제에도 유럽발 훈풍이 예상된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유로존 국채를 많이 보유한 유럽ㆍ미국 금융기관들이 ECB에 자산을 처분한 뒤 여유자금을 한국 등 신흥국 시장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윤영교 IBK투자증권 연구원도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이어 가장 많이 수출하는 지역이 유로존인 만큼, 이번 양적완화로 유로존 내수가 살아날 경우 장기적으로 국내 경기 회복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CB의 양적완화가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다. 기업 입장에서 양적완화는 채권 등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을 쉽게 하는 정책인데, 기업 대출의 은행 의존도가 80%로 미국(20%)보다 훨씬 높은 유로존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그 중 하나다. 유로화 약세로 유로존 수출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 또한 엔화 약세에도 수출 증가율이 미진했던 일본의 사례에 비춰볼 때 낙관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 자금의 글로벌 시장 유입 효과도 미국의 금리인상 기대에 따른 달러 강세 흐름으로 반감될 가능성도 있다. 류용석 현대증권 시장전략팀장은 “달러 자산 가치는 높아지는 반면 유가나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신흥국 시장에 투자할 매력이 떨어진 상황이라 국내 시장에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ECB의 유동성 확대가 오히려 투기자본의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각국의 양적완화 경쟁을 부추기는 등 금융시장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2일 “ECB의 통화정책에 따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예상하며 (대응책을)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출구전략(미국)과 양적완화(유럽ㆍ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통화당국의 정책 선택 여지가 비좁아진 것도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