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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인문예술잡지 F

입력
2015.01.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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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예술잡지 F의 독자들은 얼마나 될까? 현대미술의 감상자 혹은 애호가들은 얼마나 될까? 매개자의 도움 없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평을 자주 듣는 미술은 이러다 점점 지지자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가끔씩 하게 되는 종류의 질문들이다. 작년만 해도 수익성과 취업률 계산으로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인문학, 철학, 예술 관련 학과들의 폐과, 무분별한 통폐합, 구조조정의 소식이 잇달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미술창작환경과 제도의 문제를 개선하고자 모인 ‘미술생산자모임’에 ‘미술소비자모임’이 등장하는 일이 있었다. 이들은 미술 생산자는 지나치게 많지만 미술 소비자들이야말로 찾기 어렵다며 참석한 좌중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미래의 활동이 주목되는 이 모임의 주체도 실은 젊은 작가들이다.

이런 와중에 ‘인문예술잡지 F’의 창간의도에 대한 글에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참으로 고마운 질문들이 있다. “인문사회과학은 동시대의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예술과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는가? 예술은 스스로를 갱신하기 위해 다양한 현실과 접속을 시도하고 있는데, 예술로부터 많은 것들을 빚져온 인문학은 동시대 예술을 너무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유운성, 이상길, 주일우, 맹정현, 심보선 등을 편집위원으로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발행하고 5호부터 계간으로 출간되고 있는 이 잡지는 ‘인문,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동시대 예술을 이야기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특히 명확한 장르로 규정짓기 힘든 예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이렇게 ‘지형학을 그리기 힘든 목소리들이 예술비평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근래에 출간된 15호의 주제는 ‘부고(訃告)’다. ‘재난 이후의 삶을 둘러싼 여러 성찰들 가운데 잡지는 타인의 죽음을 알리는 최초의 형식’에 대해 다룬다. 인터넷, 스마트폰, SNS가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이제는 고인과의 친분이나 관계의 거리를 넘어 지구의 저편에서까지 전해오는 실시간의 부고를 받게 되었다. 심지어 세월호의 경우처럼 아직 도착하지 않은 부고들을 섣불리 예견하고 속수무책 지켜만 봐야 하는 집단적인 참담함도 겪었고 최근에는 프랑스의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리스트의 공격과 충격적인 부고가 촉발한 논쟁이 들끓었다.

수록된 글 중에서 홍성일의 ‘부고에 대하여-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읽다’는 어머니를 잃고 상실감과 고통에 시달렸던 롤랑 바르트가 수년에 걸쳐 쓴 메모를 모은 ‘애도일기’에 대해 말한다. 그가 구분한 ‘사건으로서의 죽음’으로부터 ‘지루한 죽음’으로의 이행은 이런 부고들을 서둘러 정리하려는 기획의 의도와 문제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야’라는 원칙으로 재빨리 사건으로서의 죽음을 특별할 것도, 돌이킬 수도 없는 ‘일반적인 죽음’의 하나로 의미화하고 그로부터 죽음이라는 충격을 의식적으로 완화하는 일들에 쉽사리 동의하고 침묵하는 일 말이다.

필자는 바르트를 인용하며 죽음이라는 국면을 통해 산 자의 생이 열리는 기회에 대해 그런 때의 죽음은 “운동을 일으키고, 흥미를 자극하고, 긴장감을 깨우고, 행동을 하게 하고, 마비를 일으킨다”고 묘사한다. 그러니까 바르트의 두려움은 단순하게 특정한 죽음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열어준 살아남은 자의 삶에 대한 또 다른 기회, 고인의 물리적인 부재가 아니라 추상적인 부재가 갖는 상징의 층위들이 소멸하는 것이다. 그의 두려움은 “고인의 상징적인 삶을 죽이는 주체가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죽음을 대면할 때의 즉각적인 비관 혹은 반대로 과도하게 비대해지는 긍정, 미래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아니라, 지금 이곳을 의심하고 모험으로 바꾸며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애도를, 지난한 싸움을 해나갈 수 있을지 이 글은 스스로의 자리부터 의심한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 대한 인문학자들의 관심과 해석은 미술 내에서 소비되는 글의 형식과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하며 작업에 자극을 주지만 소규모 출판물이 지속되기 힘든 환경이라 괜한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모쪼록 F의 출현은 꾸준하기를.

이정민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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