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움직임을 무대의 중심에 두고 상상력을 확장해 마술처럼 무대를 변용해온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이번에는 종이 상자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끄집어 낸다. 속을 다 비워내고 벽처럼 쌓아 올린 상자 더미의 안팎에서 배우들이 공간의 마술을 보여준다. 효용성과 상상력이 완전히 역전되는 무대 ‘박스? 박스!(Box? Box!)’는 통념에 근원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무대는 추상적 공간 또는 부엌, 방 등 여러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곱 개의 에피소드 속으로 객석을 이끈다. 한쪽 벽이 완전히 박스로 채워지면 박스가 곧 벽이라는 특정 공간으로 변했다는 암시가 된다. 객석은 이 때 배우의 동작에서 사람이 서랍으로 변했다는 암시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냉장고 박스 등 낯익은 생활 소품이 변신의 마술을 부리는 무대에서 객석은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로 거듭 난다.
박스가 주인인 나라로 여행 간 사람들이 겪는 판타지가 무대의 서사다. 윤증희 사다리움직임연구소 기획실장은 “배우들의 정교한 연극적 마임에 무게를 둔 이전 작품들과 달리 이번 무대는 박스라는 오브제에 큰 비중은 둔다”며 “조명과 음악이 무대를 꽉 채워 남녀노소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스와 인간 사이의 밀고 당기는 실제 상황은 보는 눈에 따라 심리적ㆍ기술적 차원에서 갖가지 해석을 낳는다. 바로 이 작품의 커다란 연극적 가능성이다.
제작비 문제 등으로 초연 무대가 짧게 잡힌 만큼 공동 창작에 참여한 단원들이 느끼는 아쉬움이 크다. 임도완 연출, 이은주 윤진희 등 출연. 29일~2월 1일 미아리예술극장. (02)764-7462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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