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에 있다니까 기다렸다는 듯 묻는다. “혼자 뭐 해?” “놀아.” “혼자 어떻게 놀아?” 구구절절 설명하다간 대화가 끝이 없을 것 같아서 게임을 한다고 답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단어 하나를 떠올리고 그 단어가 불러들이는 다른 단어를 기다리는 놀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앞에는 종이 한 장과 볼펜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종이 위에는 ‘모르다’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놀이를 막 시작한 내가 있었다. 놀이의 가장 큰 미덕은 게임과는 달리 승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데 있다.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것도 놀이의 장점이 될 수 있다. 게임이 끝나는(over) 것이라면 놀이는 잠시 중단되는(pause) 것이다. 그래서 혼자 놀이를 해도 전혀 억울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시작했다가 나도 모르게 끝나는 것, 그것이 바로 혼자 놀기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놀이의 흔적이 무언가로 남으면, 그 흔적에서 새로운 놀이가 시작되기도 한다. 가령, ‘모르다’로 시작된 연상이 전혀 새로운 단어로 끝을 맺을 때, 그것은 새로운 놀이의 단초가 된다. 하나의 놀이가 또 다른 놀이를 낳는 셈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낙서 또한 놀이가 될 수 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놀이는 계속될 수 있다. 놀이에 실패란 없다. 실패해도 그것조차 놀이의 일부처럼 느껴지므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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