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스무살이 되면 꼭 하겠다 다짐했던 것이 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핑크색으로 염색을 한 뒤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겠다는 것이다. 커트머리는 어릴 적에 가끔 이발소에 가서 남자애처럼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그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남자애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커다란 꽃이 달린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것도 좋아했다. 사실 핑크색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언젠가 꼭 핑크색으로 염색을 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아직 못해봤다.
페미니스트라 선언하겠다는 것은 시대적인 영향이 컸다. 1990년대에는 페미니즘이 유행이었다. 커트머리를 한 당돌한 성격의 여자 의사가 나오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나는 스스로를 앞서 나가는 여성이라 여겼고, 당연히 페미니즘을 적극 옹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을 따라간 모임에서 한 아저씨가 반여성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식사가 끝날 때까지 노려보는 바람에 모두를 난감하게 만든 적도 있다.
하지만 내가 페미니즘에 진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0대 후반 남자애들과의 관계가 꼬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나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상대에게 나는 성적인 대상이라는 사실을 몇 번인가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살아있는 한 인간을 성적인 주체이자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 때의 나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물론 대중매체는 성적인 이미지들로 도배돼 있었고, 또래의 아이들은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어둠의 경로를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죄다 소비적이고 유혹적인 이미지들일 뿐이었다. 10대 후반은 성별을 막론하고 성에 대한 관심이 극에 달하는 시기다. 하지만 존재하는 압도적인 욕망과 그것의 주체이자 대상인 자신, 그런 자신과 관계 맺는 타인들로 이뤄진 복잡한 방정식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대체 알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상처받은 자아와 자존심을 치유해보려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경로는 여자들의 수다들로 가득한 인터넷 세상이었다. 나와 같은 피해자 여성들로 가득한 그 세계에는 남성혐오의 구름이 희미하게 떠 있었다. 물론 먼 옛날 남녀평등을 위해 삶을 바친 위대한 페미니스트들이 말하고자 한 것이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고 남자들을 증오하라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였다. 내가 현실에서 접한 페미니즘은 일종의 여성들로만 이뤄진 치유공동체같은 거였다. 여자들로만 이뤄진 평화의 세계. 거기서 남성은 배격해야 할 존재였다.
문제는 내게는 성적인 욕망이 있고, 그것은 남성을 향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 욕망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여자들의 세계에서도 어떻게 내 욕망을 건강하게 풀어나갈지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 남자들을 애정의 대상으로 삼기에, 우리 여자들은 남자들의 세계에서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온 듯 했다. 한국에서 여성의 처지는 비참하고, 여성혐오의 뿌리는 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와 남자 사이에 높은 담을 쌓고 영원히 서로를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인간들은 성적인 욕망을 갖고 있고, 그것을 충족시켜줄 대상을 원한다. 그 대상에게 자신 또한 욕망의 대상으로서 고려되기를 바란다.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온갖 것을 한다. 물론 사람들이 죄다 24시간 성적인 판타지에만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 욕망에서 완벽하게 해방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모순된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갈증을 느끼며 그 소박하고 평화로운 여자들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때 쯤, 더 이상 페미니즘은 인기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대신 ‘가십걸’이 있었다. 좋은 대학교에 가고, 명품을 사 모으고, 멋진 남자들과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르는 ‘완벽한’ 삶에 대해 그 드라마는 이야기했다. ‘섹스앤더시티’의 캐리조차 개탄할 요즘 여자애들의 세계다. 더 이상 아무도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너와 싸워 이기는 것도, 너와 내가 동등해지는 것도 아닌, 더 나은 너를 골라내어 차지하는 것이다. 물론 이 무한경쟁의 세계에도, 너와 나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있다. 그 이야기가 듣고 싶다.
김사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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