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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찜질방을 위해… '지메시' 더 독하게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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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찜질방을 위해… '지메시' 더 독하게 뛴다

입력
2015.01.1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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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올림픽은 여성에게 참가는커녕 관전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현대의 모든 프로스포츠 역시 남성 위주로 발달해 왔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늘어나면서 스포츠계도 변하기 시작했지만 신체적 특성에서 오는 참여의 한계는 늘 존재했다. 그랬기에 그 영역에 도전하는 여성들은 늘 편견과 먼저 싸워야 했다. 하지만 세상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이겨내고 남성성 짙은 종목에서 당당하게 활약 중인 이들도 있다. 그녀들은 중독된 영역에서 고독하지만 지독하게 달려 새로운 길을 쓰려한다. 스포츠계 '독한 녀자'들의 의미 있는 도전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강한 여자'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녀자'에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편집자주-

시리즈 다시보기☞ ①송가연 ②권봄이 ③김예지 ④지소연 ⑤김자인

한국 여자축구의 간판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은 축구계 제일 가는 ‘별명왕’이다. 학창 시절부터 가는 팀마다 하느님 같은 존재였기에 붙여진 ‘지느님’부터 한국 축구사에 남긴 굵직한 발자취가 박지성(34·은퇴)과 비슷하다고 해 붙여진‘여자 박지성’, 체격과 플레이스타일이 리오넬 메시(27·FC바르셀로나)와 비슷해 붙여진 ‘지메시’까지, 수 많은 수식어가 지소연이란 이름을 대신해 왔다. 그런 지소연에겐 감내하기 힘들었던 ‘지똥이’시절이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했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힘들다 느낄 때마다 뛰고 또 뛰었다.

이문동 지똥이, 축구를 만나다

지소연이 축구를 시작한 건 서울 이문초등학교 2학년 때던 1998년이다. 당시 동네 남자 아이들과 공을 차고 놀던 지소연을 눈 여겨 본 김광열 감독이 축구부로 끌어들였다. 당연히 팀 내에서는 ‘홍일점’이었지만 웬만한 또래 남자 아이들보다 공을 잘 찼던 지소연은 언제나 주전을 놓치지 않았다. 그 때부터 불린 별명이 ‘지똥이’다. 유난히 키가 작고 얼굴도 까매서 붙여진 별명이다. 지소연의 어머니 김애리 씨는 “못 먹여서 붙은 별명 같아 속상했다”고 말했다.

‘지똥이’가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하려던 때, 부모님은 그녀의 꿈을 강하게 반대했다. 아버지의 반대가 특히 컸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뒷바라지에 드는 돈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핸드볼 선수 출신인 어머니 김애리 씨도 딸의 꿈은 응원해주고 싶었지만 몹시 애가 탔다. 한국에서 운동선수로 크는데 얼마나 많은 투자가 필요할지, 얼마나 큰 고생이 뒤따를 지가 눈에 선했다. 혹여 대한민국 최고의 여자 축구선수가 된다 하더라도 벌이가 썩 시원치 않을 것이라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당시만 해도 여자 축구선수의 해외진출은 언감생심이었고 그나마 여자 실업축구팀 입단도 바늘구멍 경쟁이었다.

'지메시' 지소연의 어릴 적 별명은 '지똥이'였다. 인스포코리아제공
'지메시' 지소연의 어릴 적 별명은 '지똥이'였다. 인스포코리아제공

김 씨 본인의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다. 2002년 자궁암 판정을 받은 뒤 건강을 잃기 시작했고, 후유증과 합병증을 겪어가며 딸의 뒷바라지에 힘을 쏟을 자신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해 남편과 이혼까지 하게 되며 지소연과 남동생 두 아이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김 씨는 남편과 헤어진 그 때부터 죽기 살기로 딸의 꿈을 밀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 핸드볼을 포기했던 자신의 삶을 딸에게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느님’이 된 ‘왈가닥 지똥이’

초등학교 때까지 남자 선수들에게도 뒤처지지 않았던 지소연의 실력은 여자 축구부가 있는 오주중학교 진학 후부터는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지소연이 진학한 뒤 오주중은 60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쓰며 국내 여자축구 우승 트로피들을 쓸어 담았다. 친구들은 지소연에게 ‘하느님 같은 존재’라며‘지느님’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하지만 이 때 정의감 넘치는 다혈질 소녀였던 지소연의 인생을 바꾼 하나의 사건이 생긴다. 매번 지소연이 속한 오주중에 패해 골이 난 다른 학교 축구부가 걸어온 패싸움에 가담해 상대 학생을 흠씬 두들겨 팬 일이다. 체구가 작았던 지소연을 싸움으로는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 얕봤던 상대 학생은 이빨이 모두 뽑힐 정도로 얻어맞았다. 그날의 패싸움으로 오주중 학부모들이 물어야 했던 합의금은 총 1,800만원. 이 가운데 300만원이 지소연 몫이었다. 불미스런 사건으로 딸의 꿈이 무너질까 걱정한 어머니 김 씨는 없는 살림에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해결했다. 김 씨는 왈가닥 소녀였던 지소연이 이 사건 이후로 몰라보게 의젓해졌다고 했다.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지소연은 이 때부터 이를 악물고 더 뛰었다. 어려운 집안 살림에 하루 빨리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에서다. 명실상부한 ‘지느님’으로 거듭났다. 힘겨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소녀의 이야기가 전해지며 2005년에는 홍명보 장학재단 4기 장학생으로 뽑혔다. 적지 않은 장학금과 축구 용품이 꾸준히 지급됐다.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였다. 한 번 땅이 적셔지자 이곳 저곳의 후원이 따르기 시작하면서 집안 살림도, 지소연의 꿈도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2010년 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 실버볼과 실버슈를 수상한 지소연.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2010년 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 실버볼과 실버슈를 수상한 지소연. 한국일보 자료사진

‘여자 박지성’의 꿈, 월드컵 우승

지소연의 등장과 맞물려 한국여자축구연맹에서는 여자 유소년 대표팀에 적극적인 투자를 쏟았다. 일본 축구의 ‘100년 대계’ 정도의 거창한 프로젝트는 아니더라도 투자 없이는 미래도 없다는 이의수 전 회장의 철학에 바탕해서다. 2007년 지소연이 속해있던 U-16 대표팀은 호주에서 열린 AYOF 국제친선대회 등을 통해 국제 대회 경험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2007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16 대회에서 3위를 기록해 이듬해 뉴질랜드서 열린 U-17 여자월드컵에 진출했다. 이 대회에서 여자대표팀의 사상 첫 8강을 이끈 지소연은 3년 뒤 독일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실버볼(대회 최우수선수 투표 2위)과 실버슈(8골·득점 2위)를 거머쥐며 3위라는 대기록을 이끌었다.

지소연이 걸어온 길은 곧 한국 여자축구의 역사가 됐고, 어느새 지소연에겐 ‘여자 박지성’이란 별명이 붙었다. 오는 6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여자월드컵에서 난생 첫 성인 여자월드컵 본선 무대에 도전하게 되는 ‘여자 박지성’의 각오는 남다르다. 지난 16일 중국에서 열린 4개국 초청 여자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이끌고 귀국한 그녀의 목소리엔 한층 더 큰 자신감이 묻어났다. 대회 직전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자신감을 얻어 오겠다”던 약속을 지킨 그녀는 “이제 여자 월드컵 16강을 목표로 뛰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성과는 컸다. 대한민국은 박은선(28·로시얀카)의 부상 재활 등 100% 전력이 아닌 상황임에도 월드컵 본선 진출국인 캐나다(1-2 패), 중국(3-2 승), 멕시코(2-1 승)를 상대로 두 번 이기고 한 번 졌다. 특히 0-2로 뒤처지다 3-2로 뒤집은 중국전 승부는 단연 명승부였다. 지소연은 이날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중국 여자축구에 매운 맛을 보여줬다.

자신감을 등에 업은 지소연은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다”면서 조심스레 ‘월드컵 우승’도 이야기했다. 지난 2011 독일여자월드컵에서 라이벌 일본이 우승한 게 자극제가 됐다. “이번 대회에서도 16강 토너먼트에만 진출하면 그 뒤엔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라며 16강 그 이상의 목표도 내비친 지소연은 “언젠간 월드컵 우승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기루 같은 꿈만은 아니다. 올해로 24살인 지소연은 적어도 두 차례, 많게는 세 차례 여자월드컵 본선에 도전할 수 있다.

지소연의 우승 DNA이 대표팀에도 이식될까. 일본 고베아이낙 시절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는 지소연. 지소연은 일본에서 활약했던 3시즌 모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인스포코리아제공
지소연의 우승 DNA이 대표팀에도 이식될까. 일본 고베아이낙 시절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는 지소연. 지소연은 일본에서 활약했던 3시즌 모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인스포코리아제공

‘지메시’가 가면 길이 된다

지소연의 또 다른 별명은 ‘지메시’다. 작은 체구로 펼치는 믿기 힘든 활약이 마치 메시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데서 비롯된 별명이다. 영국 무대에서 뛰고 있는 지소연은 메시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체격의 선수들과 상대하면서 절대 주눅들지 않는다. 힘 대신 테크닉으로 승부하는 점 역시 메시와 같다. 지소연은 “영국 선수들이 상당히 힘이 세다”면서 “빠른 판단과 간결한 패스로 동료들을 이용한 플레이를 하는 게 나만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보폭 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더 많이 뛰었고, 몸싸움에서도 지기 싫어 웨이트 트레이닝에 쏟는 시간도 늘렸다.

그렇게 악착같이 뛴 지소연은 지난 시즌 19경기에 출전해 9골을 기록했다. 지소연의 절대적인 활약 속에 2013시즌 7위였던 첼시 레이디스는 2위까지 뛰어올랐다. 이마저도 우승팀과 승점 동률을 이루고 골 득실에서 한 골 뒤져 기록한 준우승이다. 아시안게임 차출로 자리를 비운 두 경기에 지소연이 있었다면 우승컵의 주인공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지소연은 특히 리그에 뛰는 140여명의 선수가 직접 뽑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까지 안았다. 지난 2008년~2009년 첼시 레이디스의 비디오 분석을 담당했던 박효진(34) 씨는 “아시아 선수가 자존심 센 영국 여자축구 무대에서 최고 선수로 인정받는 건 5년 전만해도 상상도 못했을 일”이라며 “지소연의 활약은 우리가 소식으로 접한 수준 그 이상의 활약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첼시 입단 당시에도 팀 최고 대우를 약속 받았던 지소연은 1년의 계약 기간이 남은 올해 초 인상된 연봉으로 다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으로 스무 살 때던 2011년 일본 고베 아이낙에 진출한 후 지금까지 해외 무대에서만 4시즌을 치른 지소연은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꿈과 목표를 위해 감내해야 했을 과정이었다”고도 말했다.

해외 무대 개척은 지소연 개인만의 꿈은 아니었단 걸 잘 알고 있었다. 한국 여자프로리그인 WK리그는 현재 선수의 연봉 상한선을 5,000만원으로 정하고 있다. 구단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함이지만, 아무리 잘 하더라도 5,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봉의 한계는 곧 동기 부여의 한계이며, 이는 리그 전체의 사기 저하로도 다가온다. 한 축구 관계자는 “현행 제도 속에서 이 같은 제도적 한계들을 뛰어넘기 위한 방법은 해외진출 뿐”이라고 말했다.

지소연의 발자취가 한국 여자축구 선수들에게 전하는 희망과 가능성은 크다. 한 축구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지소연의 활약을 본 다수의 유럽 구단들은 ‘제 2의 지소연’을 찾기 위해 한국 여자축구 선수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첼시에 입단한 지소연. 인스포코리아제공
지난해 첼시에 입단한 지소연. 인스포코리아제공

‘발롱도르’의 꿈, 그리고…

유럽에서의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지소연은 올해 본격적으로 유럽 무대 점령에 나선다. 지난해 2위를 기록한 첼시 레이디스는 유럽 각국 1부리그 1, 2위에게 주어지는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얻었다. 지소연에게는 자신의 진가를 유럽 전 무대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유럽 진출 후 꾸게 된 가장 큰 꿈을 묻자 “FIFA 발롱도르 시상식에 초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해 동안 세계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는 매년 최고의 여자 선수도 별도로 선정한다. FIFA가 선정한 10명의 후보 중 FIFA 가맹국의 감독과 주장, 기자단 등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상위 3명의 선수가 시상식에 초대된다. 지난 2011년에는 지소연과 고베 아이낙에서 함께 뛰던 사와 호마레(36.일본)가 일본을 여자월드컵 우승으로 이끌며 아시아 최초로 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10 FIFA U-20 여자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 여자축구국가대표팀 선수들이 귀국한 2010년 8월 4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지소연 선수가 어머니에 대한 질문을 받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2010 FIFA U-20 여자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 여자축구국가대표팀 선수들이 귀국한 2010년 8월 4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지소연 선수가 어머니에 대한 질문을 받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하지만 지소연에겐 그보다 더 큰 소중한 꿈이 있다. 바로 오래 전부터 계획해 온‘엄마의 찜질방’이다. 지소연은 지난 2011년 일본 무대 진출 당시 기자회견에서 연봉을 받으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자 “고생하신 엄마께 찜질방이 딸린 집을 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간 자신을 뒷바라지 하며 건강을 살피지 못했던 어머니를 위한 애틋한 꿈이다.

지소연에게 찜질방 딸린 집을 마련하겠단 목표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물었다. “내 집 마련 꿈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 지소연은“아직 몇 %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영국 등 해외 활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이면 그 꿈이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 4개국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지소연은 꿀 같은 휴가 중이다. ‘여자 박지성’ ‘지메시’등 화려한 별명을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 곁 지똥이’로 다시 돌아간 지소연은 “올해 여자월드컵과 소속팀에서 기대에 부응하는 활약을 펼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하겠다”며 ‘빅이벤트의 해’를 맞은 각오를 밝혔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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