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만 작전 4년 맞아 교도소 방문 "막상 얼굴 보니 나쁜 기억 지워져"
"해군서 안보 교육하며 제2의 인생
팔·다리에 남아있는 보정물은 훈장 앞으로 방황하는 청소년 돕고 싶어"
“해적들이 왜 나를 쏘았는지가 궁금해서 물었는데 미안하다고만 했다.”
‘아덴만의 영웅’석해균(62) 전 선장이 이달 초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인 해적 마호메드 아라이(26)와 극적으로 조우했다.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을 극적으로 구출한 ‘아덴만 여명 작전’ 4주년(1월 21일)을 앞두고 석 전 선장이 자신에게 총격을 가한 아라이를 찾은 것이다. 석 전 선장은 16일 전화인터뷰에서 “면회 전에는 걱정했는데 막상 처음으로 얼굴을 보니 이제 나쁜 기억은 지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6월부터 경남 진해 해군교육사령부에서 안보교육담당관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으며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아라이는 다른 해적 4명과 함께 복역 중이다.
_아덴만 작전 4주년을 맞는 소회는.
“4년이 지났지만 해적들과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발버둥 쳤던 긴박한 순간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덴만 작전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올해 네 살이 된 기분이다.”
_건강상태는 어떤가.(석 선장의 왼쪽 팔과 다리에는 금속 고정물이 남아 있다)
“많이 호전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병원에 안가도 될 정도로 치료도 거의 끝난 상태다. 가끔 이국종 교수나 의료진과 통화하면서 상태를 체크하는 정도다. 다만 고정물이 없으면 걷지 못하기 때문에 평생 제거할 수가 없다. 왼팔과 왼쪽 다리 장애는 아덴만 작전이 준 훈장이라고 생각한다.”
석 전 선장은 피랍 당시 청해부대에 사실을 알리고 배를 지그재그로 몰거나 엔진오일에 물을 타는 등 소말리아까지 가는 시간을 벌어, 아덴만 작전의 성공을 도왔다. 그러나 해적 아라이가 쏜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가 13일만에 의식을 회복, 288일만에 퇴원했다.
_트라우마나 정신적 고통은 없나.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극복한 것 같다. 아라이를 만났을 때도 걱정했던 것과 달리 처음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안정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4년 전과 달리 나는 아무런 구속이 없는 상태인데 아라이는 갇힌 신세가 됐다는 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_아라이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대화를 오래 나누지는 못했다. 나를 왜 쏘았는지가 궁금해서 물었는데 답변 없이 미안하다고만 했다.”
_2011년에 해적들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는데.
“해적들도 먹고 살기 어려워 그런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트라우마에서 빨리 벗어나자는 의도도 있었고. 이번에 직접 만나고 나니까 좀 낫다. 나쁜 기억도 빨리 지울 수 있을 것 같다.”
_제2의 인생은 어떤가.
“해군 교육생을 대상으로 안보 강의를 하고 외부강연 요청이 있으면 학교나 공공기관에 나가 강의도 한다. 재작년 9월 청해부대 14진이 아덴만으로 출항할 때부터 해군 부산작전기지에 나가 장병들을 환송하고 있다. 현재 17진이 나간 상태이고 오는 20일에 18진이 나간다.”
_해군과 계약 기간이 2년 4개월 남았는데 향후 계획은.
“기회가 주어지면 청소년 상담과 같이 청소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청소년들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다는 뉴스를 접하면 마음이 아팠다. 늦깎이로 방송통신대 청소년학과에 입학해 올해 3학년이 되는데 돌아서면 배운 내용을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열심히 매진해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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