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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하면 되는 것, 그리고 해도 안 되는 것

입력
2015.01.1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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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 세계 경제인 중 가장 핫(hot)한 인물은 단연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아닐까 싶다. 그는 화제가 될만한 요인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1999년 단 돈 7,000만원으로 알리바바를 창업한 뒤 15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인물이 됐고(초고속 성공 신화), “빌 게이츠와 나의 경쟁은 더 나은 자선 활동을 위해 누가 돈을 더 효과적으로 쓰느냐”라고 말할 정도로 마음 씀씀이까지 곱다(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건 아이러니하지만 그의 변변찮은 과거다. 땅딸막한 키에 왜소한 체구, 툭 튀어나온 광대 등 그의 외모는 누가 봐도 볼품 없고(누군가의 외모를 이렇게 평가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지만 그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니 그냥 쓰자), 3수 끝에 간신히 지방의 한 대학에 들어가고 입사시험에만 30번 넘게 떨어질 정도로 학업성적도 형편 없었다. 주경야독을 해야 할 정도로 집안형편 역시 어려웠다. 그는 “내가 성공할 수 있다면 중국인의 80%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시대 ‘루저’(Loser)들에게 던지는 ‘하면 된다’는 메시지다.

사실 “하면 된다”는 이른바 ‘캔두이즘’은 우리나라 1960, 70년대 경제개발시대를 관통하는 빼놓을 수 없는 정신이었다.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등 우리나라 창업 1세대들은 모두 그랬다. ‘정주영 경영정신’이라는 책을 보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든 반드시 된다는 확신 90퍼센트, 그리고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퍼센트를 가지고 일해 왔다. 안될 수도 있다는 회의나 불안은 단 1퍼센트도 끼워 넣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안다. 그들의 성공을 존경하고 또 부러워하지만 그들의 성공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들 중 누군가 그들처럼 된다고 하더라도 그건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 뚫고 가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그러니 그들이 던질 수 있는 솔직한 메시지는 ‘하면 된다’가 아니라 ‘(정말 온 힘을 다해 열심히)하면 될 수도 있다’ 쯤일 것이다. 자수성가형 인물들에게서 흔히 보여지는 자기 과신, 그러니까 마치 그들이 걸어온 길만이 정답인 것마냥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는 걸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갑갑한 건, 그런 실낱 같은 희망조차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2015년 한국의 현실이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마윈 회장처럼, 또 과거 창업1세대처럼 (한껏 과장을 섞거나 무리한 확신을 담아서) “하면 된다”고, “나처럼 하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조차 찾기 어렵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강덕수 STX 회장, 박병엽 팬택 부회장 등 국내에서 자수성가 신화를 써내려 가던 이들은 하나 둘 몰락하며 자취를 감췄고, 이제 남은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대를 이어 차례차례 부를 물려 받은) 재벌 3, 4세들이다. 그들이 정상적인 세금을 내고 부를 물려받는 것까지 뭐라 할 생각은 없지만, 자질과 능력을 검증 받지 않은 채 경영권을 세습하는 것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은 없다. 하지만 그들(30대그룹 재벌 3, 4세)은 평균 28세에 회사에 입사해서 불과 3.5년 만에 기업의 ‘꽃’이라는 임원으로 승진한다고 하니, 이젠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는 자연스러운 수순이 돼버린 듯하다. 대기업에 취직하려면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고, 임원이 되려면 0.4%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며, 그 자리에 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22년에 달하는 일반인들로선 ‘해도 해도 안 되는 것’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뜨겁게 달궜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갑질 횡포는 단순히 사무장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희망에 매달리고자 하는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윗대들이 ‘하면 된다’는 희망을 줬다고? 천만에. 너희들은 해도 안돼!”라고 말이다. 하긴, 이렇게 재벌세습이 단단한 구조에서는 마윈 회장 같은 자수성가형 인물이 그 틈을 비집고 나오기 쉽지 않을 테니 그 말이 맞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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