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수 있다" 너도나도… 非등록 강사 포함 수만명 추산
강연에 목마른 대중 "인생 바둑의 한 수 배우는 느낌"
14일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시티 15층에 위치한 디큐브아카데미. 66㎡(20평) 남짓한 강의실에 치과의사, 교사, 드라마 작가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들이 섞여 강의를 듣고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 강의를 디자인하라’란 이날 강연은 업체가 요구하는 강의제안서를 만드는 방법이 주제였다. 전문강사를 양성하는 이곳에선 제안서뿐 아니라 청중에 호소력 있는 보이스 트레이닝, 강연을 위한 파워포인트 디자인, 낯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아이스브레이킹 같은 강연기술을 가르친다. 수강생이 몰리는 이유는 단 하나, 자기만의 경험과 지식을 전하는 전문강사가 되기 위해서다. 방송 리포터였던 이인숙(57ㆍ여)씨는 “제2의 직업으로 강사를 선택했다”며 “동기부여와 자기계발 강연자가 되려고 대학원에 다니며 심리학 같은 콘텐츠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2조원 강사시장, 강의분야도 다양
강사시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강연료가 적게는 회당 10만원에서, 조금 이름이 있다 싶으면 수백만원을 넘는다. 초기 자본이 들지 않는데다,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 없을 만큼 진입장벽이 낮은 것도 장점이다. 자신만의 경험과 통찰력, 직무 스킬 등을 맛깔스럽게 전달한다면 누구나 명강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강사협회에 등록된 강사수는 이미 1만3,000명을 넘어섰다. 5년 전과 비교하면 37%이상 늘어난 규모다. 등록하지 않고 활동하는 강사들을 더하면 국내 강사는 수만명에 이를 것이란 추산이다. 안병돈 강사협회 사무국장은 “2,3년 전부터 강연이 대중을 파고들면서 퇴직자들, 젊은 취업자들까지 강사를 희망한다”며 “등록 강사수도 매년 500명 이상 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강연시장 규모는 2조원 정도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순수강사료만 따졌을 경우다. 기업교육을 하는 엑스퍼스컨설팅이 2013년 내놓은 인재개발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기업교육시장 5조2,000억원 가운데 강연이 57%인 2조9,960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강연 분야는 강사료가 63%인 1조7,700억원을 차지하고, 시설이용비 이동교통비 기타 등이 나머지를 구성하고 있다. 기업만이 아닌 지자체, 이벤트 강연, 토크콘서트 등 대중강연까지 포함하면 국내 강연시장은 연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강연시장이 형성되면서 강사섭외를 대행해주는 업체만도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대중강연을 상품화 해 3만~20만원대의 입장권을 판매하는 이벤트 업체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강연 분야는 인재개발ㆍ직무교육 외에 취업ㆍ채용, 교육ㆍ인문학, 사회공헌, 법률ㆍ통일, 보건ㆍ의료, 예술ㆍ문화, 경제ㆍ경영으로 세분화되는 추세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창조인재 양성을 위한 특강이 단골 메뉴가 됐다.
기업 강연시장에 바람을 일으킨 삼성그룹 사장단회의 강연자들은 직역, 전문분야, 진영이 망라돼 있다. 2011년부터 4년간 강연한 283명은 김상조(교수) 차동엽(신부) 박칼린(뮤지컬 감독) 김영희(PD) 엄홍길(산악인) 하일성(야구 해설가) 전원책(변호사) 이석우(카카오 대표) 등에 강연 주제도 가족소통, 북한동향 및 남북관계, 진보란 무엇인가 등으로 자유롭다. 삼성측 인사는 “삼성에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거나, 쓴소리를 하는 명사라도 배울 점이 있다면 1순위 섭외대상”이라고 말했다.
대중 왜 강연을 찾나
강연을 찾는 이들이 급증한 이유에 대해선 무엇보다 현대인의 생활 패턴과 관련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공통된 분석이다. 바쁜 일상사로 독서를 등한시하는 풍조와 맞물려 온라인에 떠다니는 수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습득하기에 강연이 제격이라는 것이다. 자칭 강연마니아인 박지원(23ㆍ대학생)씨는 “책 읽기보다 강연듣기가 효율적인데다, 강연에는 인생 바둑의 한 수를 배우는 것과 같은 이론과 현실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삼성도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그 분야 최고 전문가들에게 강의를 듣는 것만큼 효과적인 학습은 없다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조직 내 강연문화가 마련됐다. 강연시장 흥행은 한국사회가 소통을 중시하는 수평구조로 변해가는 방증이라는 설명도 있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대선 직전 시골의사 박경철, 방송인 김제동씨와 진행한 청춘콘서트를 기점으로 강연이 소통의 문화코드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지식강연 컨퍼런스 TED가 국내 강연시장을 자극한 측면도 있다. 1984년 비영리단체로 출범한 TED는 유료로 진행된 강연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덕분에 빌 클린턴, 앨고어, 스티븐 호킹, 빌게이츠 등 지금까지 2,000여 유명인사의 강연을 누구나 안방에서 듣게 된 것이다. 2012년 고교생으로는 국내 처음 TEDx(각 나라에서 개최하는 TED 형식의 소규모 강연)를 연 김영서(20ㆍ대학생)씨는 “테드 명강사들 강연을 들으며 영어공부를 하다 보니, 도움을 줄 동영상을 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맘에 맞는 친구들과 테드 동아리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정준호기자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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