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빨간책
백욱인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ㆍ262쪽ㆍ1만5,000원
재미있고 부피도 얇은 책이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야겠다. 지적인 패러디로 엮은 풍자와 조롱이 아찔할 만큼 신랄하다. 거기에 동원된 지식과 배경이 넓고 깊어서 따라가려니 숨이 찰 지경이다. 보르헤스, 벤야민, T.S. 엘리엇, 매클루언, 브레히트, 푸코, 스티브 잡스, 조지 오웰, 루소, 미시마 유키오, 루쉰, 마키아벨리, 토머스 모어 등 시인, 소설가, 평론가, 학자, 사상가를 줄줄이 호출한다. 소설과 희곡, 심포지엄, 평론, 가상 인터뷰 등 여러 형식으로 쓴 23편의 글은 현실과 가상을 한데 엮어 현란한 지적 유희를 펼친다.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통쾌한 대목도 많지만, 마구 두들겨 맞은 듯 정신이 얼얼하다. 열정적인 선동과 냉철한 비판을 오가며 독자를 설득하는 저자의 입심이 대단하다.
인터넷이 상용화한 지 20년, ‘디지털 시대, 가축이 된 사람들을 위한 지적 반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지난 20년 간의 한국 인터넷 문화와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격문이다. 인터넷 데이터베이스에 길들여진 디지털 원주민들에게 던지는 돌팔매다.
저자는 사이버스페이스, 디지털 문화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며 연구 주제로 다룬 대표적 1세대 디지털사회학자다. 그는 “지금의 인터넷 세상은 세계를 바꾸려고 하기는커녕 세계를 설명하는 것조차 포기한 채 단지 세상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가축의 왕국이 되고 있다”며 이런 현실을 타도할 ‘거꾸로 선 행동’을 촉구한다.
인터넷이 실은 똥바다나 다름없고, 디지털 봉이 김선달이나 다름 없는 크고 작은 인터넷 건달들이 사기와 삥땅으로 이용자들을 등치고 있다며 그들의 갖가지 수법을 폭로한다. 큰 건달은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어 이용자들의 노동을 공짜로 흡수해 팔아먹고, 골목 건달들은 저작권 대리인이라는 이름으로 양아치처럼 푼돈을 거둬들이고, SNS는 삐끼 노릇을 한다고 욕한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인터넷 왕국의 영토 확장 수법과 교묘한 통치술을 폭로한다. 여기에는 ‘세습 디지털 왕국’(저자의 표현) 삼성도 포함된다.
저자의 입심이 가장 도드라지는 대목 중 하나가 ‘인터넷 똥바다가’다. 김지하의 시로 임진택이 소리를 짠 판소리 ‘똥바다’를 패러디했는데, 극히 한국적인 상황으로 일베와 국정원, 현 정권도 호되게 때린다.
“애국과 용기의 듣보잡들아(단결하라) / 디지털 비트똥을 실컷 내깔기자 / 남김없이 싸질러 똥바다로 만들자 /… 페이스북똥 트위터똥 구글똥 네이버똥 다음똥 / 일베똥 일워똥 디시똥 아이폰똥 갤럭시똥 / 카톡똥 리트윗똥 담벼락똥 댓글똥 좋아요똥 싫어요똥 / 국정똥 민주똥 새누리똥 안철똥 진짜똥 가짜똥 / …. 똥이야~ 비트똥 봐라 이제 내 뒤지탈똥 나온다 / 민주주의 같이 생긴 파시즘똥 / 자유주의같이 생긴 독재똥 / 평화주의처럼 생긴 군사주의똥 / 빠친코 비슷한 통일대박똥…”
거칠게 결론을 말하자면 ‘인터넷 이용자들이여, 정신 차리고(즉 속지 말고) 궐기하라’ 쯤 되겠다. 23편의 수록글 가운데 마지막 편은 ‘인터넷 이용자 혁명 선언’이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을 패러디한 이 글에서 저자는 “광장에서 출발한 인터넷이 장사꾼의 장터로 전락하고, 인터넷은 그들의 영토, 이용자는 그들의 신민이 되었다”고 분개하며 궐기를 선동한다.
“현재 인터넷 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새 인터넷 건설의 장애인 강도 플랫폼 세력을 파괴할 것뿐인 줄 알진대(중략), 우리 이용자 민중은 일치하여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라.”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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