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국가
게리 하우겐ㆍ빅터 부트로스 지음, 최요한 옮김
옐로브릭ㆍ416쪽ㆍ1만8,000원
전남 신안군 섬 지역의 한 염전업주는 갈 곳 없는 노숙자와 장애인을 섬에 사실상 감금한 채 급여 없이 강제 노역을 시켰다. 경기 포천시의 아프리카 예술박물관에 머물던 아프리카 출신 공연노동자들은 월 60만여 원의 급여를 받으며 열악한 기숙사에 머물렀지만 쫓겨날까 봐 2년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현대사회에 노예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11월 17일 국제인권단체 워크 프리(Walk Free) 재단이 내놓은 ‘세계 노예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도 약 9만3,700명이 노예처럼 살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노예제 금지법이 없는 나라는 북한뿐이었지만 노예가 사라진 나라는 한 곳도 없었다. 물론 아무리 강력하고 효율적인 사법체제라도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폭력에도 빈부의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폭력 국가’의 저자이자 국제인권단체 인터내셔널저스티스미션(IJM)의 설립자인 게리 하우겐은 노예제를 비롯한 사적 폭력이 특히 빈자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들을 보호하는 데 무관심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이 첫 장에서 소개하는 인도 벽돌 공장 사례는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벽돌 공장의 고용주 V는 노동자들을 가두어 놓은 채 음식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도망치려는 노동자들은 폭력배를 동원해 집단 구타하고 성폭행했다. IJM 소속 활동가들은 치안 판사를 대동하고 현장에 도착해 모든 범죄 증거를 기록했다. 그러나 경찰은 2년 동안 이들을 기소하지 않았고 법원은 계속해서 판결을 미루다 4년 반이 지나서 V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들은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고 있다. “우리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IJM은 전 세계에서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한 무료 법률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은 IJM 소속 및 그 지원을 받는 활동가들의 경험을 토대로 쓰였다. IJM 일원들에 의하면 개도국에서는 부유하지 않으면 폭력으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또 아무리 개도국 빈민에게 경제적 원조를 하더라도 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위 계층은 빈곤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국의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는 개발도상국이 경제성장에 실패하는 원인을 “권력과 부를 거머쥔 이들이 그 힘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만을 만들기 때문”이라 보았다. 이 책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개개인을 보호할 제도적인 근거가 있어도 그것이 실질적으로 빈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면 불평등이 심화되고 경제성장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책은 부자와 가난한 이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형사사법제도를 개선해야만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는 개도국뿐 아니라 어느 사회에나 적용된다. 한국에서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은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된 채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사법제도가 제 기능을 찾고 모든 이에게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야만 한국 사회는 더 나아질 수 있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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