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했다. 여러 쟁점들이 있었으나 경제 분야 주요 이슈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었다. 대통령은 ‘상생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한 주요 방법으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을 주문했다. 아울러 개혁의 시기를 3월로 못 박았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0일 노동시장 활력제고를 위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노사정위원회에 논의를 요청했다. 이제 노사정위원회가 개혁 논쟁의 무대가 됐다.
이런 대책과 주문을 두고 노동계, 경영계, 시민사회 및 언론 등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경영계와 보수 언론은 정부안에 대해 비판적 수용 입장인 반면, 노동계와 진보 언론은 비정규직 ‘장그래’를 양산하는 개악이라고 격렬하게 반대한다. 야당 대표도 제안된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이 ‘전국민을 비정규직화 시키려는 계획’이라고 비판한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논의해 봐야 합의가 어렵다는 전망도 제시했다.
현재 노동시장 구조, 제도 및 관행 등에 대한 우려와 걱정에는 너나없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제안하는 대안과 해법의 차이는 현저하다. 특히 문제의 근본에 대한 노사간 인식은 합의 가능성에 회의를 갖게 한다. 당사자나 정치권이나 3월을 시한으로 한 2개월 대타협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언론은 그 틈새를 비집고 논의를 진영화하고 싸움 붙이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런데도 노사정이 짧은 시간 내 양보와 타협 가능한 묘수를 찾아낼 수 있을까?
지난해 연말 고용노동부가 논의를 위한 발제문 성격의 종합대책을 제안한 이후 노동계와 경영계도 각자 안을 제출했다. 경영계는 비정규직의 문제가 정규직 과보호에 있으며 그 주요 수단인 고용경직성과 연공급체계가 해체돼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비정규직 남용 및 확산 원인이 고용기간 제한방식에 있다며 상시ㆍ지속업무의 정규직 고용원칙을 명확히 하고 기간제 근로의 사용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내도급 근로방식에서도 차이가 현저하다. 경영계는 산업 구조조정 및 시장변화에 맞춰 사내도급 활용의 적법성을 유연하게 판단하고 경제법적 보호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노동관계법상 사용자성을 확대해 고용사업주와 사용사업주의 책임 공유를 제도화하고 도급과 파견의 법률적 판단기준을 명확히 해 사내도급의 남용을 억제하자고 제안한다. 특수형태업무종사자들에 대해서도 경영계는 경제법적 규율을 요구하는 반면, 노동계는 근로자성 인정에 기반한 노동3권의 보장을 주문한다. 임금, 근로시간, 정년연장 등의 이슈들에 대해서도 노경의 입장은 천양지차다.
어찌 타협에 이를지 난감하다. 모두에게 통합적 차원의 양보를 요구하나 노사 모두 대표성 권위에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당사자의 합의를 이끌어낼 방법도, 조정의 수단도 여의치 않다.
필자의 판단으로 현재의 교착을 해결할 ‘신의 한수’는 사회안전망의 혁신적 재구축에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대표적인 복지후진국이다. 근로자의 임금 총액 가운데 사회보험 등에 의한 사회임금 비중은 2012년 기준 12.9%에 불과하다(OECD 평균 40.7%). 즉,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복지 가운데 기업복지의 비중이 절대적이란 이야기다. 따라서 취업 여부는 개인의 후생복지를 결정하는 관건이며 임금은 생계와 미래의 삶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이런 조건에서 자신의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과 똑같다.
일자리가 곧 생명인 조건에서는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된 노사 간 합의를 유인하기 어렵다. 개혁과정에서 수반되는 전환의 비용이 근로자의 삶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선, 고용보험의 수혜대상과 수준을 높여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가입률 제고와 가입범위 확대를 위한 지원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최저임금의 역할 확대도 중요한 요소다. 이제까지 노동시장의 개혁에 성공한 나라들 대부분에서 고용체제 전환의 비용이 근로계층에 전가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공유됐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