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뉴스를 다루다 보면 늘 기본 전제처럼 깔리는 수치들이 있다. 정부나 한국은행이 한 해 경제를 전망할 때도 맨 먼저 내세우는 통계이니 눈 밝은 이들은 숫자 몇 개만 보고도 그 해 경제를 가늠하곤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통계들 중 상당수가 갈수록 예전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로 치면 괜찮다 할 숫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현실을 잘못 읽게 만드는 일종의 왜곡 현상이 심해지고 있어서다. 특히 우려가 되는 것은 이를테면 ‘착시 통계’라 할 숫자들에 정책을 다루는 당국자들이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문을 보자.
“작년은 경제개혁 3개년 계획 1년차로 핵심과제들을 중점 추진한 결과, 우리 경제 성장률이 4년 만에 세계 성장률을 앞지른 것으로 추정되고, 고용도 12년 만에 50만 명대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수출액과 무역흑자, 무역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2년 연속 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경기회복의 온기가 국민 여러분의 실생활까지 고루 퍼져 나가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우선 첫 부분에 등장하는 고용을 먼저 따져 보자. 작년 신규 취업자 수가 12년 만에 가장 많은 50만명대(53만3,000명)를 기록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과거 같으면 어려운 경제 사정에 50만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뿌듯해 해도 마땅할 결과다. 하지만 50만개의 대부분은 50대(23만9,000명 증가)와 60대(20만명 증가)였다. 직장에서 밀려나 자영업에 뛰어들고, 이마저도 실패해 다시 임시직에 취업하는 이들이 상당수인 연령대다. 한창 일할 30대는 오히려 2만1,000명 줄었고 사회생활 초년인 청년층(7만7,000명 증가)에선 주로 인턴, 비정규직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어느 것 하나 그다지 기뻐할 일은 아닌 듯 보이는데, 2002년 통계 작성 이후 비정규직(작년 8월 기준 약 607만명)이 처음으로 600만명을 넘어선 사실(이 역시 일자리 증가라면 증가다)은 언급되지 않았다.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의 구성요소들은 어떨까. 작년 무역흑자 474억달러가 역대 최고인 것도 분명 사실이다. 이 역시 예전 같으면 우리 수출역군들이 나라 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좋아했을 수치다. 하지만 요즘엔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줄어 생기는 이른바 ‘불황형 흑자’가 너무 가팔라 오히려 걱정이다. 정부는 당초 지난해 수출이 전년 대비 6.4%, 수입이 9.0%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수출 2.4%, 수입 2.0% 늘어나는 데 그쳤다. 수입은 일절 안 하고 수출로만 돈을 벌면 좋을 것 같지만,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불러 온 한 원인으로 세계적인 수출입 불균형이 언급될 만큼 지속되면 부작용이 크다.
요즘 ‘D(디플레이션)의 공포’, ‘디플레 망령’ 하며 유명세를 타는 저물가는 어떤가.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3%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물가는 늘 높은 것, 어떻게든 끌어 내려야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 시절로 치면 요즘은 그야말로 태평성대다. 하지만 물가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수입 원유가격이 1년 만에 반 토막 난 덕이란 걸 기억해야 한다. 유가가 전체 물가를 끌어내리는 사이, 전기·수도·가스요금은 3.9% 오르는 등 주요 공공요금과 축산품, 공산품은 큰 폭으로 올랐다. 오랫동안 낮게 유지되는 물가는 경제주체들의 소비를 뒤로 미루게 해,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는 디플레의 원인이 된다. 저물가는 특히 대부분 물가상승률을 기초로 책정되는 임금 인상률도 발목을 잡아 국민들의 호주머니조차 가볍게 만들고 있다. 저물가를 반길 상황이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가 말하는 경제개혁 3개년 계획으로 우리 경제가 살아났으면 정말 좋겠다. 박 대통령의 강조처럼, 3년의 노력으로 향후 30년간 안정 성장의 토대를 마련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년 연두 기자회견에선 적어도 이런 착시 통계를 성과로 내세우지는 않았으면 한다. ‘왜곡된 통계에 기반한 경제를 이렇게 바로잡겠다’고 말하는 정부의 모습이, 건강한 30년 미래를 준비하는 3개년 계획의 본래 취지에 훨씬 어울릴 듯 싶다.
김용식 경제부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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