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항은 여기서 답변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이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답변 아닌 답변이다. 질문은 동국대 총장 선출에 자승 총무원장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였다. 동국대 재학생 대표들과 총동창회는 지난해 12월 잇따라 자승 총무원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서울의 한 호텔 식당에서 자승 총무원장 등 고위직 임원들이 김희옥 총장을 만나 사퇴를 강요한 정황이 있다”는 게 고발의 이유였다. 당초 연임 의사를 밝혔던 김 총장은 이날 실제 차기 총장 후보직을 사퇴했다.
앞서 동국대 총장후보추천위원회(총추위)는 김 총장과 불교학부 교수인 보광 스님, 조의연 영어영문학부 교수를 최종 후보로 선정했었다. 그런데 김 총장을 부른 자리에서 자승 총무원장이 “차기 총장은 스님이 하면 좋겠다”고 말해 사실상 사퇴를 종용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사흘 뒤엔 또 다른 후보인 조 교수가 “(조계종) 종단의 선거 개입으로 엉망이 된 총장 선거 후보에서 사퇴하겠다”며 물러나 의혹은 더욱 커졌다.
두 후보의 사퇴로 결국 세 후보 중 보광 스님만 남았다. 동국대는 15일 학교법인 이사회를 열어 차기인 18대 총장 선출 여부를 논의한다. 현재로선 보광 스님이 유력하다. 보광 스님은 2013년 총무원장 선거 때 자승 총무원장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자승 총무원장이 ‘보은 외압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게 그래서다.
조계종 안팎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지만, 자승 총무원장은 한 달이 넘도록 공식적인 해명을 하지 않았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이날 회견에는 당시 호텔 점심식사 자리에 있었고 이 때문에 자승 총무원장과 함께 고발 당한 교육원장 현응 스님, 포교원장 지원 스님도 배석했다.
총무원장은 연간 300억원에 달하는 예산 집행권, 전국 사찰의 주지 임명권, 종단 산하 사찰 재산에 대한 감독ㆍ처분권 등을 가진 조계종의 공직이다. 막강한 권한만큼 공무 상 벌어진 잡음에 대해 해명해야 할 책임 또한 따른다.
자승 총무원장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새해 종단 운영의 기조로 강조한 건 소통이었다. “소통과 화합, 혁신으로 종단의 미래를 준비하고 희망의 한 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질문엔 입을 다물었다. 행여 자승 총무원장의 소통 천명이 자신이 얘기가 통하는 이들과만 ‘선택적 소통’을 하겠다는 뜻이라면 조계종에 희망의 한 해가 과연 올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선다.
김지은 문화부 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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