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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시청 즐기는 멋쟁이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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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시청 즐기는 멋쟁이 할아버지

입력
2015.01.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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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지금도 줄줄 외고 시골장터에서 친구와 시간 보내기

특별히 가리는 음식 없지만 유독 조기 좋아해… 막걸리도 한잔씩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건강해야겠다는 김용근(가운데) 옹과 아들 부부.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건강해야겠다는 김용근(가운데) 옹과 아들 부부.

“어느 날 새로 산 냄비를 태워 발을 동동 굴리며 애를 태운 적이 있는데 아버지께서 ‘그까짓 것 새로 사면되지 뭘 그러냐’고 웃어 넘기시더군요.” 경북 봉화군 상운면 김용근(103ㆍ사진) 옹의 아들 병화(70)씨가 전하는 김 옹에 대한 일화다.

김 옹이 태어난 것은 1912년 10월. 햇수로 올해 만 103살이다. 집에 나이로는 설을 쇠면 104살이다. 요즘도 TV격투기를 즐겨보고 성경구절을 줄줄 외고 있을 정도로 정신이 맑다. 가족과 이웃 주민들은 남들이 보기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가볍게 웃어 넘기는 낙천적 성격이 장수 비결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옹이 사는 집은 봉화 최고(最古)인 107년 역사의 문촌교회 바로 옆이다. 아들 병화씨와 며느리 이영기(66)씨 부부와 함께 산다. 병화 씨는 3남3녀 중 맏딸(75) 다음(장남)으로,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다 퇴직한 뒤 부친을 모시려고 5년 전 고향이자 처갓집이 있는 이곳으로 이사했다.

김 옹의 장수비결은 낙천적 성격과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는 식습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며느리 이씨는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 드시고,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걱정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늦은 시간에 귀가하면 굳이 자식들 찾지 않고 혼자 찌개를 끓이고 밥과 반찬을 찾아 먹는다. 식사시간은 아침 7시30분, 점심 낮 12시, 저녁 6시 어김없다. 방안에는 간식거리로 두유 등이 늘 있어야 할 정도로 왕성한 소화력을 자랑한다. 이씨는 “육류는 무엇이든 좋아하고 특히 해물, 그 중에서도 유독 조기를 좋아하신다”고 전했다. 김 옹은 “조기 굵은 놈을 구워 먹으면 사람(건강)에 좋아, 갈치도 맛있어, 전에는 놀괭이(노루)나 산짐승을 많이 먹었지”라며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방법까지 설명했다. 폭음은 아니지만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 요즘도 가끔 한두 잔씩 하곤 한다. 특별히 어떤 음식이 장수의 요인이라고 꼭 집어 말하긴 어렵다. 한가지,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좋아한다는 점이다.

김 옹의 집안은 타고난 장수집안으로도 유명하다. 병화 씨는 “할아버지(김 옹의 아버지)께선 98세, 할머니도 80대 후반에 돌아가셨다”며 “건강도 대물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70줄에 들어선 병화씨도 남들이 보기엔 60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김 옹의 낙천적 성격은 독실한 신앙심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30대 때 상운교회 설립에 동참, 집사로 봉사하기도 했다. 이 씨는 “지팡이를 짚고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시고 주말 예배를 드렸는데 작년부터는 체력이 떨어지셨는지 주말예배만 나가신다”고 말했다. 아직도 주요 성경구절을 또렷하게 외고, 찬송가도 가사와 음정을 정확하게 부르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성경구절로 시편의 한 구절을 읊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책을 안 봐도 훤해”라며 한자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책을 보면 글씨가 왔다 갔다 해, 어느 글을 봤는지…. 지금은 못 봐”라고 말했다.

김 옹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특유의 사교성을 잃지 않는, 멋쟁이 할아버지로도 유명하다. 23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자식들의 소개로 다른 할머니와 ‘연애’를 한 적도 있다. 병화씨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상운 장이 서는 날이면 버스를 타고 장터로 나가 친구 같은 후배들을 만나곤 했다”며 “농담 삼아 장에 가서 할머니 한 분 손잡고 오시라고 했더니 ‘따라 오는 할망구가 없다’고 하셨다”며 웃었다.

TV를 켜 놓고 격투기와 레슬링을 볼 때면 영락없는 감독이요 코치다. 어릴 적 씨름을 한 경험 때문인지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격투기를 시청한다. 시청 도중에 “허리를 잡고 넘어뜨려라”는 등 코치를 아끼지 않는다.

김 옹이 건강을 잃지 않는 데는 무엇보다 자식들의 효성을 빼놓을 수 없다. 이씨는 100살이 넘은 시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뒤늦게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땄다. 무료할 때는 시아버지와 내기장기를 두기도 한다. 2012년에는 봉화군으로부터 효부상을 받았다. “지금도 당신께선 목욕도 혼자 할 정도여서 어른 모신다면서 특별히 하는 일도 없다”고 말했다.

병화 씨 부부는 “이제까지 살면서 당신이 누구와 말다툼이라도 한번 하는 걸 보지 못했다”며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양보하고 사시는 모습, 우리도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식들 어릴 때 고생을 많이 시켰는데…. 이젠 잘 살아야지”라며 혹시라도 자리에 드러눕게 돼 또다시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을까를 가장 걱정했다.

이용호기자 ly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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