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계속운전 미룰 수 없다’(본보 14일자 29면)는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의 외부 기고를 읽고,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반론을 보내왔다. 지면 사정상 오피니언면이 아니라 경제면에 게재한다.
천년고도의 밤을 밝히던 월성 1호기가 요즘 들어 닭갈비로 폄하되고 있다. 먹으려 하면 먹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까운.
월성 1호기의 명운은 예견된 인재(人災)이다. 운전을 멈춘 지 2년을 넘긴 이제 와서 운전도 손해이고, 폐로도 손해막심. 민간이 불신하고, 주민이 불안하고, 국민이 불편한데, 그럼에도 정부는 ‘안전하다’는 간판을 내걸고 목하 고민 중이다. 문제는 원자력이 위험해서라기보다 공기업이 원전의 안전을 과신하고 있다는 데 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무리한 운행을 오래 버티기 힘들다. 고장 나는 건 시간문제일 뿐.
월성 1호기와 같은 노형으로 캐나다에서 운영되던 중수로 19곳은 모두 경영부실과 운영 자질부족으로 정상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방만경영과 직원비리로 몸살을 앓았던 한국수력원자력은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을 신청한 상태이지만, 주민과 시민단체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며 폐로를 주장하고 있다. 월성 1호기와 캐나다의 19개 중수로 모두 천연 우라늄을 땔감으로 쓰는 대신 무거운 물, ‘중수’로 원자로를 식히고, 중성자를 느리게 한다. 그런데 월성 1호기 같은 중수로는 냉각수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핵반응이 증가해 격납건물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다. 1986년 최악의 사고를 일으킨 체르노빌 원자로와 유사한 설계상의 문제가 있어 세계 원전 중 11%에 불과할 정도로 사양길에 접어든 낡은 노형이다.
1982년 가동을 시작한 한국 최초 중수로 월성 1호기는 30년간 발전을 해왔다. 15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계속운전을 승인한다면, 앞으로 10년을 더 운전할 수 있게 된다. 계속운전하면 그만큼 발전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지만, 환경단체는 위험성을 이유로 반대한다. 중앙정부와 환경단체 사이의 팽팽한 대치전선이다.
한수원은 2005년부터 핵심인 압력관을 비롯해 9,000건이 넘는 설비개선을 마쳤다. 소요된 예산만 7,000억원에 이르는데, 아무런 사회적 합의도 없이 선(先)투자한 셈이다. 게다가 중수로를 계속 운행하려면 선행투자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투자 부담이 늘어난다. 그래서 캐나다는 2기를 경제적 이유로 폐쇄하고, 2020년까지 7기를 추가 폐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런 조치는 과거보다 안전규제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설계 당시가 아닌 최신 규제에 맞추다 보면 설비개선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규제요건에 따라 계속운전 비용도 달라지는데, 규제기준은 세계적으로 꾸준히 강화 추세다.
월성 1호기의 비상시 냉각계통 열교환기가 바로 현재의 안전기준에 미달하는 대표적 설비다. 사고시 핵연료를 냉각하는 핵심설비로 1991년 이후 2대 이상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1983년 운전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기준 적용 이전에 만들어져 1대만 보유하고 있다. 최신 안전기준을 모두 충족하려면 상당한 투자가 불가피하다. 게다가 극한조건시험이나 다수호기손상까지 제대로 평가하려면 더 많은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캐나다는 계속운전에 앞서 안전규제청에서 적용하는 최신규제와 개선권고를 중심으로 안전을 점검하고, 상세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또한 계속운전 결정에 앞서 환경영향평가를 하는데 평가단에는 시민단체 등이 들어간다. 시민 의견을 청취한 뒤 비용을 산정하고, 승인이 나면 설비개선에 착수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영업비밀 등의 이유로 내용이 공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승인도 받기 전에 일방적으로 설비개선을 마친 상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감독기관인 산업부나 계속운전 여부를 결정할 원안위가 모두 한수원과 속내가 같은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설령 월성 1호기가 기술적으로 안전하고, 법제적으로 합당하다 해도 사회적으로 부적합하고, 국민들이 불화(不和)한다면 물러서야 한다.
월성 1호기. 신라왕조의 계륵인가, 살신성인의 계시인가, 혹여 원전에 똬리 튼 맹목적 경제논리인가. 이번 원안위의 결정은 과연 대한민국이 원자력을 제대로 안전하게 운영 관리할 수 있는지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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