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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민주당, 리더십부재ㆍ포퓰리즘으로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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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민주당, 리더십부재ㆍ포퓰리즘으로 실패했다

입력
2015.01.1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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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3년 천하

1년도 못 채운 민주당 총리들

18일 당 대표 선거가 부활 분수령

가이에다 반리 일본 민주당 대표가 15일 총선 참패를 책임지고 사임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가이에다 반리 일본 민주당 대표가 15일 총선 참패를 책임지고 사임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009년 8월 30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은 480석중 308석을 차지해 일본 헌정사상 단일 정당 최고 의석을 확보했다. 민주당은 119석에 그친 집권 자민당을 누르고 정권을 차지했다. 1955년 창당한 자민당이 1993년 과반수 획득에 실패, 비자민 연립세력에 정권을 내준 적은 있지만 단일 정당에 밀려 정권을 내준 것은 처음이어서 일본 정계의 충격파는 더 컸다.

2012년 12월 16일 3년여 만에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57석에 그쳐 294석을 얻은 자민당에게 다시 정권을 내줬다. 이는 민주당 창당 초기인 1996년 10월 획득한 52석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민주당은 지난 해 12월 15일 열린 중의원 선거에서 72석으로 의석수를 다소 늘리기는 했지만, 민주당이 더 이상 자민당의 대항마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의 몰락으로 일본 정계에서는 양당 체제가 무너지고 상당 기간 자민당의 독주가 불가피해졌고, 이로 인한 일본 정치의 퇴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민주당 정권은 자민당 장기집권 염증 반영

1996년 9월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등 진보 성향의 사회민주당 의원과 신당사키가케 출신 의원 등 57명이 참여해 결성한 민주당은 1998년 민정당, 신당우애, 민주개혁연합 등과 통합을 통해 세력을 늘렸다. 2003년 일본 정계의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가 이끄는 자유당이 합류하면서 민주당은 자민당의 아성을 위협하는 거대 정당으로 발돋움했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민당의 지지율을 앞서며 정권을 넘보는 지위에 올랐다.

민주당은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60석을 얻어 기존 의석을 합쳐 109석을 획득, 자민당을 누르고 제1당이 됐다. 이 여세를 몰아 2009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두며, 자민당으로부터 정권을 빼앗았다.

민주당 약진은 일본 유권자들이 자민당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낀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됐다. 자민당은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을 토대로 정치적 안정을 이뤘으나, 거품경제가 붕괴와 함께 리크루트 사건, 사가와 택배 사건 등 정치 부패 사건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금권정치, 파벌정치, 세습정치의 부작용이 표출되면서 유권자의 불신을 키웠다. 이런 가운데 상대적으로 도덕적 결함이 적은 민주당의 존재는 더욱 부각됐다.

자민당은 90년대말 닥친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해 소비세 도입, 우정민영화 등 구조개혁을 나서면서 농민이나 중소기업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정책을 펼친 것도 유권자의 표심이 민주당으로 옮겨가는 배경이 됐다.

리더십 부재로 민주당 갈팡질팡

하지만 민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리더들의 정책부재에다 선심성으로 내건 복지 관련 공약들을 예산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취소하는 초유의 사태가 잇따랐다.

민주당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리더십 부재다. 2009년 민주당 첫 총리직에 오른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집권 초기 미국과의 과도한 대립을 자초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미국의 의존했던 과거 미일관계에서 탈피, 대등한 입장에서 양국 관계를 모색하려는 정책을 중시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중심에서 벗어나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를 중시하는가 하면 자민당 시절 미일 양국이 합의한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공군기지의 현내 헤노코로의 이전을 백지화하고 현외 이전을 공론화했다.

그는 각종 기자회견서 “후텐마의 이설 문제에 관해서는 현외 또는 해외로 호소했다” “괌으로 이설하는 것이 미국의 억지력을 생각할 때 타당한 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등 현외 이전을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을 해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하토야마 총리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실무외교를 펼치는 과정에서 후텐마 현외 이전이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2010년 5월 “대체지는 헤노코 인근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미국에 백기를 들었다. 하토야마는 자신의 전략적 판단 미스로 인해 민주당의 정책적 한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하토야마에 이어 2010년 6월 민주당 정권 2대 총리로 취임한 간 나오토는 사회보장제도 확충 명목으로 간접세 인상을 참의원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참패, 민주당의 내부 분열을 자초했다. 9월에는 일본과 중국간 영유권 분쟁지역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을 들이받은 중국 어선 선장을 구속했다가 석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선장의 석방은 중국이 자동차, 미사일 등 첨단 제품의 원료로 쓰이는 희토류 수출을 중단한 것이 원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간 정권이 중국을 상대로 굴욕적 외교를 펼쳤다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이런 가운데 간 총리는 2011년 3월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의 미흡한 대처로 여론의 질타가 더해지자 취임 1년 남짓 만에 또 다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대중 영합주의 공약으로 인기 하락

2011년 8월 민주당 3대 총리에 오른 노다 요시히코는 진보 성향의 기존 두 총리와는 달리 보수적 색깔을 드러내, 당의 정체성 혼란을 초래했다. 그는 무기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했고, ‘평화목적에 한정한다’는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활동 규정을 삭제했다. 이는 보수 정당 자민당이 오랜 기간 추진해오던 사안이다. 노다 총리는 자신이 추진하는 소비세 인상을 전제로 자민당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여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노다 정권을 ‘자민당 2중대’라는 노골적인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노다 총리와 대립한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가 탈당, 민주당 분열을 부채질했다.

노다 총리는 아예 소비세 인상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국회해산 및 총선거를 주장하는 자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2012년 12월 총선전에 돌입했으나, 57석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내고 자민당에 정권을 헌납했다.

민주당 몰락은 2009년 총선을 앞두고 내건 선심성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서 기인한 탓도 크다. 민주당은 당시 공약으로 중학생까지 모든 자녀에 1인당 매달 2만6,000엔씩 수당을 지급하고 공립고교 전면 무상화 및 월 7만엔의 최저보장 연금 신설 등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복지 재원 16조8,000억엔을 확보하겠다고도 밝혔다.

공약은 공수표로 끝났다. 집권 1년 차에 확보한 복지 재원은 3조3,000억엔에 그친 것이다. 간 총리는 2011년 7월 국회에서 “정권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데 대해 국민에게 사죄한다”고 밝혔고, 노다 총리도 2012년 총선 직전 “2009년 총선거 당시 내건 매니페스토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데 대해 전면 사죄한다”고 말했다. 뒤늦은 사죄에도 국민들의 민심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민주당 대표선거 부활 신호탄 될까

민주당의 몰락을 일본의 소선거구 제도에 원인을 두는 견해도 있다. 양당정당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도입된 소선거구 제도로 인해 특정 정당에 과도한 표 몰아주기 현상이 발생, 정확한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12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획득한 전체 득표율은 33.1%에 불과했지만, 자민당은 전체의석(475석)의 절반을 넘는 294석을 확보한 반면, 민주당은 18.3%의 득표율을 차지하고도 72석을 얻는데 그쳤다. 득표율로만 따진다면 자민 157석, 민주 87석이 돼야 한다는 것이 선거 전문가들의 견해다. 르포작가 구레바야시 스스무는 “소선거구 제도는 득표율과 의석 획득 비율에서 괴리가 크고 그만큼 사표가 많이 나온다”며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18일 치러지는 민주당 대표 선거는 잇따른 선거에서 대패하면서 체면을 구긴 당의 부활 여부를 점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일본 정가에서는 민주당 대표 선거 열기를 4월 통일 지방선거까지 이어간다면 자민당에 대항할 명실상부한 제1야당으로 회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한다.

이번 선거에는 오카다 가쓰야 전 외무장관, 호소노 고시 전 간사장, 나가쓰마 아키라 전 후생노동장관 등 3명이 출사표를 던졌고, 한때 민주당내 강력한 총리 후보로까지 지목되던 오카다 전 장관의 당선이 유력하다. 오카다 후보는 민주당의 자주 재건을 표방, 표를 결집하고 있고 호소노 후보는 타당과의 통합을 통한 야당 재편을 노리고 있다. 새 대표의 임기는 2017년 9월까지다.

일본 언론은 “새 대표 주도로 3달 앞으로 다가온 통일지방선거, 2016년 참의원 선거 등을 통해 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지가 초점”이라며 “향후 야당 재편을 통해 아베 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 지도 관심”이라고 전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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